16. 근대화의 기수, 학교와 공장

오교수는 워낙에 근대화에 친밀감을 갖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았으나, 어차피 일어난 근대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태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내가 새마을 운동 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도 있었을 거란 생각을 하게 된 건, 두 미국 학자의 근대화 관련 연구 결과를 보고 난 다음이었어. 잉켈레스란 사람하고 스미스란 사람, 둘이서 펴낸 연구서가 한 권 있는데,1) 이 사람들은 말야, 근대화라는 개념 자체가 미국 학계에서 추방당하다시피 된 이후에도 끈질기게 근대화 연구를 계속함으로써 지속적으로 학계의 왕따를 자초했던, 어떻게 보면 의지가 굳은 학자들이라 하겠어. 뭐, 그런 연유도 있고 해서 사람들이 크게 주목하지 않은 측면도 있긴 한데, 특히 교육학 연구하는 이들은 이 책에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어. 이 두 사람이 70년대에 펴낸 Becoming Modern 이란 저술은 실은 근대화와 교육 간의 관계, 그리고 교육에 있어서의 의식 변화라는 테마에 대해서 매우 깊이 있는 시사점들을 제공해준 문제작이었어.

이 친구들이 근대화 과정을 겪은 6개 개발도상국들을 대상으로 연구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조사 대상이 된 나라들 모두에서 그 구성원들의 인식에 근대화가 일어난 것이 확인됐고, 그러한 근대적 의식, 태도 등을 가장 효과적으로 유발시킨 대표적 사회 기관 두 가지가 식별됐어. 그 두 사회 기관이 바로 학교와 공장이야. 자, 사람들의 의식을 근대적으로 변모시키는 데 있어서 학교가 큰 역할을 수행했다는 것은 듣기에 매우 타당해. 그렇지 않겠어? 현대화된 학교에는 교과서와 커리큘럼 내용 등이 죄다 이성적 역량을 키우고 합리적 사회인이 되는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니, 그 내용을 익힌 사람들이 현대적 태도를 갖게 되는 게 이상할 리 없잖아? 그런데 중요한 점은, 잉켈레스와 스미스에 따르면 학교보다도 공장이 사람들의 의식을 현대화 시키는 데 있어서 더 성공적이었다고 밝힌 데 있어. 이거 놀랍지 않아? 공장이 뭐 하는 데야? 물건 만드는 데잖아. 하루 종일 작업 라인에서 똑같은 손놀림으로 반복된 일을 하는 그런 곳일 뿐이잖아. 그런데 바로 이런 공장을 다닌 사람들이 학교 다닌 사람들보다 더 빠른 시일 내에 더 철저하게 현대성을 체득했다는 말이야.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이 작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공장에서의 생활 자체가 바로 현대인의 생활이었다는 거야. 줄 맞춰서 작업장에 출입하고, 자신에게 부과된 임무를 정시에 정량만큼 완수해야 하고, 업무 수행에 있어서 문제가 발생했을 시에는 합리적으로 대응해야 하고, 조직의 명령 라인에 순응하여 자신의 일정을 정리해야 하고, 자신이 한 만큼 금전적, 또는 인사상의 보상을 받게 되고 하는 등등의 공장 생활의 모든 면모들이 농경인들로 하여금 근대적 태도를 수용하도록 암암리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거지. 사실, 이런 일을 상상하는 것 또한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겠어. 그러나 우리의 교육과 관련된 공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사점이 뭐냐 하면, 바로, 학교에서 공식적인 커리큘럼을 통해서 노골적으로 가르친 것보다도, 커리큘럼도 없이, 아니면 잠재적인 비공식적 커리큘럼으로써 생활 그 자체를 통해서 암암리에 전달된 것의 영향력이 더 강하다는 점이야. 바로 공장이 학교보다 더 잘 가르친다는 점이라 이 말씀이야.”

“그럼, 우리의 학교도 공장처럼 만들면 될까요?”

“그래서 자네가 공장 감독관이 되고, 십장으로는 교사들을 고용하고, 컨베이어 벨트 같은 작업대 옆에 학생들 주욱 늘여놓고 수업하려고?”2)

“글쎄요... 그건 좀 그러네요.”

“우리의 학교가 공장만큼 아이들을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으려면 공장의 뭘 따라해야 할까?”

“아까 말씀하신 잉크 어쩌구 하는 학자, 아, 잉켈레스 말대로라면, 학교 안에서의 생활이 바로 배움이 되도록 하면 되지 않을까요?”

“자네의 그 말에는, 그럼 혹시 현재의 학교의 경우에는 학생들의 생활이 배움의 생활이 아니라는 전제가 깔려있는 건가?”

“..... 에, 글쎄요, 아이들이 학교 가서 아마도 하루 종일 공부하다 가긴 할텐데...”

“그런데 그렇게 공부하다 가는 게 진짜 배움의 활동, 곧 learning인가?”

계속되는 오교수의 질문에 유진은 딱 부러지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오교수의 질문의 취지는 이해할 것 같았다. 학생들에게 현대인이 되려면 이러 저러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학교에 비해서, 그냥 현대인으로 살라고 요구하는 공장에서 더 빨리, 효과적으로 현대화가 일어난다는 연구 결과에 비춰 보자면, 학교에서 학습을 이래저래 하라고 지시하는 것보다는, 학생들에게 그냥 학습을 하라고 요구하면 될 일이겠다. 헌데 오교수는 지금의 학교가 학생들에게 그냥 학습을 하도록, 배우도록 해주고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1)
Alex Inkeles & David H. Smith, Becoming Modern: Individual Change in Six Developing Countries  (Cambridge, Mass.: Harvard University Press, 1974).

2) 오교수가 묘사한 형태의 학교내부구조는 19세기 초 영국의 랭캐스터 학교(Lancasterian School)와 동시대 미국 뉴욕의 공립학교협회 자선학교(New York Public School Society)에 감시체제로써 실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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