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조회, 잠재적 교육과정

지금 생각난 예인데, 한국의 학교에서 여전히 조회를 하고 있지? 조회의 공식 목적이 뭐야? 공지사항 전달하고 교장 선생님 말씀 듣는 거 아니야? 헌데 교장 선생님 훈화는 얼마나 효과적으로 아이들에게 전달될까? 훈화의 교육적 효과가 얼마나 될까 이 말이야. 까놓고 말해서, 거의 없겠지? 애들 죄다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리고 있지 않겠어? 혹여 훈화 내용에 귀를 기울였다가 잠에라도 빠져버리면 체육 선생님한테 걸려서 얻어맞을 위험도 있으니, 적극적으로 듣지 않으려는 노력을 해야 되는 것일 수도 있고 말야. 조회라는 엄연히 상존하는 교육활동의 공식적 목적이 이렇듯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데 반하여, 조회의 비공식적 목적은 어떨까? 그 비공식적 목적이 뭔지 알겠어?”

“글쎄요..... 한 번씩 아이들을 길들이자는 거 아닐까요?”

“그 표현이 적확할지는 모르겠지만, 조회란 원래 일제 때의 군국주의적 교육문화의 잔재이고, 이 같은 활동의 목적은 집단에 대한 순종, 위계질서에 대한 충성과 복종심을 앙양하는 데 있었다는 점은 자명한 일이야, 군대 훈련에서 연병장 사열이 바로 그와 같은 목적을 갖고 있듯이. 그렇지? 조회에서 가장 강조되는 점이 뭐야? 교장 선생님 훈화를 얼마나 잘 들었는가를 확인하기? 아니잖아. 얼마나 줄을 잘 맞춰 서 있느냐 하는 것 아냐!”

“네, 그렇군요. 줄 서는 게 목적이었죠, 헤헤.”

“그렇게 줄서는 건 노골적으로 그 교육 목적을 과시하진 않지.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목적은 실로 청소년의 권위에 대한 복종, 개인의 집단에 대한 희생, 개성의 억압 등과 같은 전체주의적 가치관의 전수에 있다고 할밖에. 대개 ‘착하게 살자’는 교화적 내용이 대종을 이루는 교장 선생님 훈화, 그리고 전체주의적 메시지를 전하는 줄서기, 이 둘 중에서 어느 쪽의 영향력이 더 컸을 것 같아?”

“에... 잘은 모르겠지만, 최소한 줄서기가 암암리에 끼친 영향이 훈화의 영향에 비해 작지는 않을 것 같네요.”

“그래, 솔직히 말해서 나도 연구를 안 해봤으니 잘은 모르겠어. 하지만 최소한 자네 말 정도의 결론엔 도달하게 된다구. 자, 오늘의 중요한 레슨은 이거야, 공식적 과정인 훈화보다 비공식적인 줄서기가 학생들에게 더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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