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오도된 현대화, 서구화

1. 현대화 vs. 서구화
 

우리는 한국 교육의 외적 성장을 냉철히 평가해보기 위해서 한국의 교육이 추구해온 현대성(modernity)에 대하여 좀 더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오랜 세월동안 ‘교육 근대화’의 기치를 내걸고 서구가 주조한 과학적 지식과 근대적 정신을 우리 국민에게 전수해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서구의 문물에 대한 맹목적인 숭상과 추종이 발생했는데, 이를 우리는 대부분의 제3세계에서 발생한 ‘서구화(Westernization)’의 한 지류로 볼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근대화(modernization)와 서구화는 같은 것일까요, 다른 것일까요?

우리의 현대성 추구인 ‘근대화’는 ‘서구화’의 추구와 많은 부분 별 구분 없이 뒤엉켜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서양이 달성한 현대성의 정수인 과학적 정신과 합리성 등을 넘어서서 서양 문명의 모든 양상을 죄다 모방 내지는 숭배의 대상으로 삼는 태도가 서구화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서구 문물을 가져다 쓰는 것이, 그것이 과학적이거나 합리적이어서가 아니라, 단순히 그것이 서양인들이 쓰니까 멋있고, 세련되고, 더 발전된 것이리라고 믿기 때문이라면, 이러한 모방은 근대화가 아니라 서구화라고 봐야 하겠습니다. 서구화는 무조건 서구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이니까요.

예를 들어, 저는 개인적으로 음악에 대단히 관심이 많고, 동서고금의 음악을 가리지 않고 죄다 듣고 즐기는 편인데, 서양 문명의 특정 시기에 발생한 클래식 음악이라는 장르가 비록 지극히 매혹적이고 뛰어난 인류 문화의 정수이기는 하나(저는 바흐, 베토벤, 모짜르트를 사랑합니다), 그것을 숭배하는 것과 현대화 사이에 어떤 직접적인 관련이 있을까 의심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인이 현대성을 취득하기 위하여 과학과 합리성을 존중하는 훈련을 받는 것이 20세기 교육의 틀 안에서 정당하다고 볼 수 있겠으나, 그렇다고 해서 서양의 음악만을 배우는 것까지 그렇다고 할 수 있을지 저는 의심합니다. 제가 바흐를 들으며 느끼는 감동과 흥을 저는 가야금 산조에서도 동일하게 느낀다고 믿기 때문입니다(저의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음악 공부를 하는 한 학생이 서양 음악의 ‘우월성’을 주장하며 극심하게 반대했던 경험이 있습니다만, 다문화 세계 속에서 특정 문화의 우월성을 논하는 일의 무의미함은 서구학계에서는 이미 예전에 논의가 종결된 사안이라는 점을 부언하겠습니다).

이렇듯 ‘맹목적인 서구화’로 성격 지을 수 있는 우리 교육의 현대화는, 현대성의 체득에 있어서 서양 교육의 껍데기에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서양 교육의 본질은 심하게 외면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서양의 옷, 취향, 유행 등을 걸치면 서양 정신의 본질까지 얻을 수 있다고 집단적으로 오해한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2. 서구의 현대문명의 수입 대행자 일본 


     그런데 우리 민족은 여타 동양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현대성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가진 서양의 문물을 수입하는 길이 현대 세계에서 생존을 보장 받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에 관해서는 잠정적으로 범국민적 합의를 형성 했을는지는 모르나, 그런 서양 문물을 수입하는 과정에서 주체성과 자율성을 박탈당하는 불운한 역사적 정황으로 인하여, 그 문물을 수입해주는 중개상의 안목에 의존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알다시피, 그 중개상인 일본은 일본 자신의 역사상에서도 지극히 극단적인 국가적 상황에 처해있었던 형편이어서, 장기적으로는 자국민을 위해서도 큰 해를 끼칠 가능성이 높은 독특한 교육체제를 축조해가고 있었습니다. 그 교육은 군국주의, 제국주의, 전체주의 등의 이념으로 특징지을 수 있습니다. 이런 이념들을 추구하는 데 일조하기 위한 교육이 비록 기본적으로는 서양의 ‘선진’ 교육 체제를 도입하였다고는 하나, 그 선진 교육 체제가 지니고 있었던 깊숙한 본질까지 충분하게 숙고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당시 일본의 교육은 오로지 부국강병을 위하여 1억 전국민을 대동단결할 의도로 서양 교육 체제가 보여준 제반 효과성과 효율성에 집중하였을 뿐, 서양 교육이 혼탁한 근대사를 뚫고 성장하며 보존해온 자그마한, 그러나 지극히 고귀한, 전인(全人) 교육의 추구는 도외시하였음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3. 실종된 서양 교육의 명품


     제가 그냥 쉽게 ‘전인 교육’이라고 지칭한, 그러나 그보다는 훨씬 그럴듯한 명칭이 있을, 서양 교육의 본질이란 것은 고대문명 이래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서양 교육사상의 정수를 뜻합니다. 이 계통의 주요 사상가로는 쏘크라테스, 플라톤, 아우구스티누스, 에라스무스, 코메니우스, 루소, 페스탈로찌, 프뢰벨 등등을 열거할 수 있습니다. 이들 모두는 학생 내면에 숨겨져 있는 참된 자아를 겉으로 끄집어내는 것을 교육의 목적으로 천명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비록 서로 다른 사상적 배경을 가지고 있으나, 루돌프 슈타이너, 마리아 몬테소리, 죤 듀이, J.S. 닐, 이반 일리치 등등, 여러 교육철학적 선각들이 이 전통을 이어왔습니다.

일본은 이런 본질을 철저하게 외면했습니다(이 외면이 의도적인 것이었다는 역사적 증거는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이렇게 서양 교육의 본질이 철저하게 누락된 기묘한 서양 교육과 일본 교육 간의 짬뽕 결합체를 강제로 이식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이렇게 시작된 우리의 현대 교육이 그 현대성의 추구에 있어서 서양 교육의 본질 또는 핵심을 놓쳐버리게 된 것은 어쩌면 역사적으로 예정되어 있었던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즉, 말로는 ‘전인 교육’을 외쳐도, 우리 교육의 틀이 전인 교육에 맞도록 고안된 것이 아니었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일본이 물러간 이후에 우리나라에 성립된 한-미간의 평등하지만은 않았던 관계로 인하여, 새롭게 축조되는 교육 체제 또한 동시대의 미국이라는 또 하나의 필터를 통하여 서양 교육 수입을 지속했어야 했던 것 역시 우리의 현대 교육사에 있어서 지속적인 자율성의 부재라는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4. 앞으로 나아갈 길


     우리의 역사의 굴곡이 어떠했든 간에, 우리와 우리의 자손들은 우리의 전대(前代)보다는 나은 교육을 향유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때문에 우리가 우리 자신도 모르게 우리를 지배해온 현대성이라는 패러다임을 분석해보고, 그것을 뛰어넘어 보다 본질적이고, 우리 스스로 주체적으로 빚어내는 새로운 교육적 패러다임을 모색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교수의 글을 읽고 나서 유진에게 하나의 의문이 들었다. 오교수는 어떤 주제나 소재에 관해 수업을 시작할 때, 결론적인 이야기를 결코 먼저 하는 법이 없다. 즉, 두괄식 방법을 안 쓴다는 말이다. 헌데 이번에는 일본의 제국주의적 교육에 관해 공부를 시작하기도 전에, 그것에 대한 부정적인 결론을 미리 요약해서 유진에게 전해준 것이다. ‘왜 스타일을 바꾸신 거지? 그만큼 일제 교육은 재고의 가치도 없는 거라서? 아님, 진도를 좀 빨리 나가시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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