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한일관계

“저도 어머니가 한국인이에요. 절반은 한국인 피가 흐르죠. 그래서 한국에 대해 남다른 애정이 있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인들처럼 무조건 일본인을 미워하지는 않아요. 저는 한국 문화도, 일본 문화도 다 사랑해요. 그래서 공부도 했지요. 공부를 하고 보니 일본이 20세기 전반에 한국에 얼마나 큰 상처를 줬는지도 잘 알게 되었어요. 제 희망은 두 나라 사람들이 서로 보다 더 깊이 이해하고, 그래서 평화롭게 지내게 되는 거예요.

제가 지금까지 관찰한 바에 따르면, 한국인들이 일본의 문화나 역사에 관해서 잘 몰라요. 일본을 작은 섬나라라고만 믿고 있는 것도 그런 예이죠. 일본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고, 일본 문화를 서양인들이 얼마나 높이 평가하는지, 또 일본이 비서구권 국가들 중에서 유일하게 자력으로 근대화에 성공한 나라라든지 하는 것들도 잘 인정을 안 해주는 것 같아요.1) 단지 전근대에 한국이 발달된 문물을 일본에 전해주었다는 것 하나만으로 여전히 일본을 얕잡아보는 관성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여요.

하지만 실상은, 그런 일본에 의해 한국이 식민지가 되어버렸잖아요. 뿐만 아니라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는 일본 식민지주의자들의 영향이 많이 혼합되어 있어요. 과거에는 이런 주장을 하면 화내는 한국인 학자들이 많았었는데, 90년대 이후로는 소위 ‘식민지 근대화론’이 공식적인 토론의 이슈가 되었죠. 이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요, 저는 식민지 근대화론에 관해서 한국인들이 너무 예민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첫째, 근대화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죠, 타력 근대화는 말할 필요도 없고요. 일본 식민주의자들이 한국을 근대화시켰다는 건 따라서 그들에 대한 칭송이 아닙니다. 둘째, 인류 역사상, 근대화라는 과정을 순전히 자기 나라의 내적인 에너지로만 해낸 나라가 어디인지 저는 모르겠어요. 외세의 개입이라는 것은 근대화 과정의 필연적인 부분이에요. 하지만 일본이라는 외적인 변수가 없는 상태에서라도 한국이 순전히 내적인 동력만으로도 근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2) 역사를 진공상태의 실험실처럼 단순화하는 논리라고 생각해요 즉, 일종의 reductionism, 그러니까, 환원주의적 논리란 말이죠 - 다앙한 외적인 변인들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요. 셋째, 일본인들이 강제한 근대화에는 부정적인 측면도 굉장히 많아요. 왜냐하면 일본인들 자신이 근대화의 본질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경우도 많았으니까요, 특히 정치이념이나 사회철학 같은 부분에서는요. 넷째, 어찌됐든 조선의 근대화 과정에 일본 식민지주의자들의 역할이 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에요.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자기기만에 불과합니다. 예를 들어 도로를 포장하고 철도를 놓는 것, 항만을 형성하는 등등의 인프라 스트럭춰 건설은 일본의 기술, 지식, 행정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죠.3) 물론, 그런 건설이 좋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근대화가 필연적으로 그러한 인프라 스트럭춰를 갖춰야 가동된다는 가정 하에서 말하자면요. 있었던 일을 숨기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욱 당당한 자세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런데요, 사실은 한국인들만 일본에 대해 잘 모르는 건 아니고요, 일본인들도 한국에 대해 정말 몰라요. 일본의 젊은 세대는 일본에 왜 70만 명이 넘는 한국인 교포들이 살게 되었는지, 식민지 시대에 강제 이주가 어떻게 이루어졌고, 칸토 대지진 때 한국인들이 어떤 박해를 받았는지 전혀 알지 못해요. 심지어는 군국주의 일본이 아시아 전역에서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지도 전혀 알지 못해요. 어쨌든, 이렇게 가깝게 위치한 두 나라가 이렇게 서로에 관해 모르고 지낸다는 것은 결코 서로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양쪽 다 서로를 잘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과 일본 중 딱히 어느 한 쪽 편을 드는 것 같지는 않지만, 양국 관계에 대한 필드 교수의 주관은 확고했다. 일제강점기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외에는 일본에 관해 특별히 아는 것이 없는 유진으로서는 별로 할 말이 없기도 했고, 그래서 괜스레 소주잔을 치켜들며 ‘건배’를 제청했다. 한참 만에 술 한 모금을 마신 필드 교수는 한일관계 특강을 계속했다.

“일본이라는 독특한 사회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장르가 있어요. 바로 니혼진론(日本人論)이라는 장르죠. 굳이 ‘장르’라고까지 표현하는 이유는, 1945년의 종전 이후에 90년대까지 출판된 니혼진론 도서가 1,000권이 훨씬 넘기 때문이에요. 그 대표적인 것으로 태평양전 당시에 장차 점령할 일본의 국민들을 잘 파악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위임한 연구 프로젝트를 담당했던 인류학자 루쓰 베네딕트가 저술한 『국화와 칼』이 있고, 서양인들뿐 아니라 일본인 자신이 쓴 저술도 굉장히 많고, 또 한국인들이 쓴 책들도 꽤 있어요. 이어령이 쓴 『축소지향의 일본인』 같은 책이 유명하죠. 십년 쯤 전인가, 현재 한국의 국회의원이 당시에 쓴 『일본은 없다』 같은 책도 이 장르에 속하죠. 개인적으로 저는, 그 책은 지나치게 편파적이어서 좋아하지 않지만, 나름대로 재미도 있었어요. 이런 책들은 왜 일본과 일본인, 그리고 일본의 문화는 이렇게도 독특한가 하는 일본 안팎의 사람들의 의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려는 시도들이에요. 일본이 참 독특하긴 하죠, 비서구권 국가로는 유일하게 선진산업국가가 된 나라인데, 그 안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봉건시대의 문화적 양태들이 뿌리 깊게 박혀 있거든요. 이런 책들을 읽으면 물론 한국인들도 일본을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또 많은 한국인들이 예를 들어 베네딕트의 책을 읽고나서, 일본인들은 겉과 속이 판이하게 다른 위선자들이라는 고정관념을 더욱 견고하게 하는 위험도 있기는 해요. 그래도 여전히, 한국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자신들과 비슷한 듯 하면서도 내부적으로 대단히 차이점이 많은 일본인의 문화를 공부함으로써, 한국인 자신의 특수함을 보다 더 정교하게 이해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을 미국과 비교하면 두 나라가 너무도 달라서, 한국만의 미세한 특징이 드러나지 않잖아요. 하지만 한국을 일본과 비교하면 바로 그 미세한 차이점들이 잘 드러나고, 그래서 한국만의 특수성, 독특함 역시 더 정교하게 알 수 있게 되죠.”


1)
1868년의 메이지 유신을 통하여 일본은 국가적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자력 근대화를 감행했고, 서구 열강의 식민지가 되지 않고 그들에 맞설 정도의 국력을 보유하게 됐다. 한국의 근대화는 쇄국과 개화 사이의 혼란기 끝에 일본에 의해 거국적으로 실행됐으며, 중국의 근대화 과정은 외세 침략으로 점철돼 있다. 비서구권의 대부분 국가들은 서구 열강에 의해 식민지화 되어, 타력 근대화 과정을 밟았다.

2) ‘자본주의 맹아(萌芽)론’과 같이, 일본의 개입이 없었다 하더라도, 조선에는 이미 내적으로 자본주의 및 근대화의 발아 요인들이 상존하고 있었다는 주장을 필드 교수가 지칭하고 있다.

3) 일본은 서구 열강의 이른바 선진 제도를 모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국가행정제도, 법제, 군사, 경찰, 보건, 의료, 운송, 교통, 건설 등 근대화의 제반 분야에서 일본이 서구의 제도를 모방하여 자기화하기 위해 진력했던 과정은 일본 및 서구의 학자들에 의해 상세하게 연구돼있다. 일례로 철도 하나를 놓기 위해 필요한 요건은 단순한 열차 생산 및 작동 기술이나 선로 건설을 뛰어넘어, 연결도로망 구축, 연료 공급원 확보, 국토개발, 농지구획 개조, 예산 확충, 국가관리 및 행·재정적 요건 구비, 운용인력 확보 및 양성 등등 수많은 관련분야들을 총망라할 수밖에 없다. 일본은 자국에서 숱한 시행착오 끝에 완수한 철도건설 역량을 한반도에서 과시했던 것이다. 참고: Carol Gluck,
Japan's Modern Myths: Ideology in the Late Meiji Period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5; D. Eleanor Westney, Imitation and Innovation: the Transfer of Western Organizational Patterns to Meiji Japan (Cambridge, Mass: Harvard University Press,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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