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미진이 보내준 ‘시’

“다른 여자애들이 놀고 있을 때 나는 뭘 하고 있었지? 다른 여자애들이 나무에 오르고 뛰어놀 때” - 디즈니 애니메이션, 뮬란2,에 나온 공주의 한탄


그 철없는 한탄의 오류를 지적해준 시 한 수:


내가 로라 애쉴리 침구로 치장된 침대에서 아침에 일어나 플로리다 산 오렌지를 스퀴즈한 오렌지 즙과 헤로 잼을 바른 신라호텔 토스트로 아침 식사를 하고 있을 때 다른 여자애들은 찬밥 물에 말아 총각김치와 후다닥 마시고 서둘러 출근길에 올라야 한다. 그 애들을 만원 버스나 전철에서 마주하게 된 사람들은 그 애들 입에서 김치 냄새를 맡을 것이다. 나를 아침 길에 마주친 사람들은 내입에서 포푸리 향내를 맡을 것이다.

내가 김기사가 열어준 벤즈 S시리즈 뒷좌석에 앉아 학교에 갈 때, 다른 애들은 인간으로 꽉 찬 지하철 속에 끼여 땀 흘리며 등교해야 한다.

내가 오늘 만날 지인들을 생각하여 앤 클라인 드레스를 입고 샤넬 향수를 뿌리며 준비할 때, 다른 애들은 학교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존슨 앤 존슨 로션을 바르고 있다.

내가 남친이 모는 BMW 를 타고 하이야트의 JJ마호니스로 저녁 먹으러 갈 때, 다른 애들은 남친과 함께 명동을 걷다 김밥집에 들어가야 한다.

내가 여름방학을 맞아 카프리해 디아도스 호텔의 스위트룸에 투숙할 때, 다른 애들은 친구들과 농활을 떠나 거머리 떼어내며 원두막에서 수박을 딴다.

내가 여신과도 같이 우리 집 테라스에서 엷은 홑옷 걸치고 석양을 바라보며 칵테일로 하루를 정리할 때, 다른 애들은 또다시 지하철에 시달리며 변두리 다세대촌 자기 집으로 귀가한다.

이토록 안락한 나의 인생과 저토록 고생스럽게 찌든 다른 애들의 인생.

그런데 내가 왜 저 가난뱅이 남친 자식과 함께 살려고 이 모든 걸 포기하고 사글세 단칸  방에 가야 하겠나? 이건 미친 짓이다.

이렇게 두 갈래 길로 우리의 인생이 갈려진 것도 다 운명의 탓, 누가 누구를 탓하겠는가.

그런데도 나는 내 운명을 버리고 저 낮은 곳의 길을 가야 하겠는가?

그건 미친 짓이다.

우리가고르는것은출생직전에우리가살아야할환경이아니라,그환경이어떤것이되었던간에그속에서자신의진정한모습을드러내는길을선택하든지말든지하는그역량을가진인간으로태어나느냐마느냐하는것일게다.우리에게주어진운명이란결국환경그자체가아니라,그환경안에서어떻게반응하느냐하는나의주체적역량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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