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미국교육’과 듀이

“한국인들은 미국뿐 아니라, ‘미국교육’에 대한 색안경 역시 벗어버려야 해.”

“아, 제가 그런 편견을 갖고 있겠죠, 아마. 미국의 교육은 우수한 선진 교육이란 생각만 갖고 있으니까요.”

“물론 미국교육이 한국교육에 비해 상대적 우위에 있지 않다는 말은 아니야. 하지만, 어쩌면 유교교육 보다도, 일본 제국주의교육 보다도 일반화하기가 훨씬 어려운 것이 ‘미국교육’이거든. 왜냐하면, 무엇보다 미국은 정말 큰 나라야. 전국에 10,000여개가 넘는 학군이 있고, 그 학군마다 각기 나름의 교육정책을 표방하고 있어. 교육의 형태의 다양성은 말할 필요가 없고, 교육의 질적 차이 또한 천차만별이어서, 어떤 곳은 세계 최상급의 귀족교육이 펼쳐지는가 하면, 어떤 곳은 제3세계와 다름없는 형편없는 수준의 교육이 제공되고 있기도 해. 시카고에 머물면서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inner city school'이라고들 하는 도심 빈민촌의 중고등학교 교문에는 금속 탐지기가 설치돼서 총 같은 무기를 소지한 학생들을 가려내고 있고, 그 앞에는 경찰 패트롤카가 진을 치고 있거든. 이런 학교들은 살벌하지. 이런 데는 제대로 교육이 이뤄지기가 아주 힘든 환경이야. 그러니까 내 말인즉슨, ‘미국교육’은 어떻다고 일반화해 얘기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거야. 특히 한국의 매스컴 수준에서 보여주는 미국교육의 모습은 극히 일부분의 인상적인 현장만 갖다 보여주는 것이어서, 한국인들이 미국교육에 대해 자연스럽게 편견을 갖게 되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경우엔 보다 학문적으로 정밀하게 ‘미국교육’이라는 것의 일반적 속성을 따져볼 수는 있을 거야. 예를 들어 세계에서 가장 지방분권화된 교육행정체제라든지, 세계에서 가장 학교교육의 질적 수준의 편차가 크다는 것, 국가적 위상에 비해 교육에 대한 투자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점.....”

“네? 교수님, 미국이 교육에 투자를 많이 안 한다구요?”

준혁이 놀랍다는 듯 물었다.

“응, 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미국이 공교육에는 투자를 적게 한다고 해야겠지. 미국의 공교육이란 전통적으로 ‘모든 이를 위한’ 평등지향적 체제거든. 이런 공교육에 충분한 사회의 자원이 투입되지 않고 있어. 나랏돈은 딴 데로 새나가고 있지, 군수사업이라든가 국방예산, 교도소 신축 같은 쪽으로 말야.1) 그러니 부자학군과 빈민학군 사이의 편차가 클 수밖에 없고, 이런 공교육에 만족할 수 없는 이들은 훨씬 많은 돈을 투자해서 사립학교에 애들을 보내지. 물론, 공립, 즉 주립이나 시립대학이 아닌 사립대학 역시 교육비가 엄청나게 고가이고, 그에 걸맞게 교육수준 역시 세계 최정상급이지. 한마디로 미국교육에는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극명하게 드러나 있어.”

“세계최강국의 어두운 그림자군요.”

“치부라 해야지. 그렇지만 역시 전반적으로 볼 때, 평균적인 수준은 아무래도 세계상위급인 건 사실이야, 비록 미국의 하위권은 OECD 기준으로 볼 때 그 수준이 낮지만 - 교육예산에 있어서나, 학급당 학생수, 학업성취도에 있어서나.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볼 때 ‘미국교육’ 하면 떠오르는 어떤 자유롭고, 개방적이고, 학생들이 직접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토론도 하고 하는, 이런 모습 있잖아. 이런 건 중산층 이상이 모여 있는 지역의 학교에서는 일반적인 모습이라고 해도 큰 무리는 없겠어. 바로 이런 게 ‘미국교육’의 한 특질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바로 이런 미국교육의 특질의 배후에 존 듀이 사부님이 계신 거지.

듀이가 시카고에서 최초에 자신의 교육적 이상을 펼치기 시작했고, 듀이 하면 이른바 진보주의적 교육 진영의 대표주자처럼 알려져 있어서, 아이들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학업을 추진하고, 체험위주의 학습을 권장하는 등의 매우 자유롭고 개방적인 교육이 듀이가 만든 실험학교에서도 펼쳐지고 있을 거라고 사람들이 예상하더군. 하지만 그건 그 옛날 초기의 실험학교 모습일 뿐, 지금은 아이들 공부를 세게 시키는 엘리트 학교가 돼버렸어. 심하게 말하자면 듀이 교육의 원래의 모습은 많이 퇴색됐다고 할 수 있지.

헌데 듀이의 철학은 좀 퇴색됐는지 몰라도, 바로 이런 식으로 듀이와 비(非)듀이가 혼재하고 있는 것이 미국교육이라고 할 수 있어. 미국교육이라고 해서 전부 자유주의적이고, 개방적이고, 아동중심적인 것만은 아니거든. 미국에도 엄격하고, 전통적이고, 교사중심적이고, 학문지향적인 그런 교육도 분명히 자리 잡고 있어. 보수적인 것과 진보적인 것이 공존하는 거지. 사실 애초에 19세기에 미국이 최초로 다수대중을 위한 대규모 근대적 학교교육을 시작할 때의 모습은 예전에 근대화 강의 때 일러줬던 공장을 모델로 한, 매우 엄격한 교육방식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어2). 일사분란하고 권위주의적인 교수방식을 통해서 자본주들은 신속히 산업사회 일꾼들을 양성하고 싶어 했던 거지. 그런데 이런 교육방식을 한참 돌리다보니까, 학부모들이 불평하기 시작하는 거야, 너무 비인간적이라고. 그때 때마침 일어난 게 듀이의 경험주의적, 또는 프래그매틱(pragmatic) 교육철학인데, 이걸 진보주의학파(progressivists)가 갖다가 썼고,3) 그래서 초기 랩 스쿨(Lab School; 실험학교)과 같이 인성교육, 체험학습, 아동중심교육을 중시하는 학교들이 미국에서 세력을 확장하게 된 거야.

그런데 재미있는 건 말야, 이 진보주의적 교육도 세월이 흐르면서 인기가 떨어진다는 거야. 이유인즉슨, 애들 성적이 떨어지거든. 맨날 목공일 하고, 닭도 치고, 물레나 돌리고, 뭐 이런 체험학습이나 하고 있다보니까 애들이 수학, 영문학 이런 걸 엄격하게 수련을 받지 못하기도 했지. 1950년대 미국사회에 이같이 아주 ‘느슨한’ 열린 교육 같은 데 대해 불만이 쌓여가고 있었는데, 때마침 1957년에 소련이 세계최초로 스푸트닉 인공위성을 대기권에 쏘아 올리는 데 성공했거든. 이때 미국사회가 패닉 상태에 빠졌어, 미국이 소련한테 뒤졌다고. 그리고 뒤지게 된 이유는 바로 낙후된 교육에 있다, 이렇게 여론몰이가 된 거야. 그래서 60년대 이후로는 또 전통적이고, 권위주의적이며, 교사중심적으로 아이들한테 많은 학습량을 요구하는 보수적인 교육방식이 대세를 이루게 되지. 헌데 이것도 또 베트남전 패전 이후에 일어난 자유주의 물결의 반발을 받게 되고, 뭐 이런 엎치락뒤치락하는 게 지금까지 계속돼왔어.”


1)
미국교육의 어두운 면에 대한 견고한 학문적 보고서로는 다음의 저서가 대표적이다: David C. Berliner & Bruce J. Biddle, The Manufactured Crisis: Myths, Fraud, and the Attack on America's Public Schools (Cambridge, MASS.: Perseus Books, 1995.)

2) 보강원고 16의 주 2) 참조.

3) 듀이는 진보주의자들이 자신의 교육철학을 곡해하고 있다면서, 자신은 진보주의자가 아니라고 선언했었다. 칼 마르크스가 이따금 자신이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고 천명했던 것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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