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미국교육’ 수입하기, 영어 스트레스

유진과 준혁은 시카고대학에 도착한 첫 날 저녁 때 기숙사 로비에서 오교수와 만났다. 재회를 기념하기 위해 오교수가 근처의 식당에서 저녁을 사겠다고 한 것이다.

대학 캠퍼스 부근의 평범한 식당까지 걸어가서 저녁식사를 하며, 유진은 그간 학교사업 건으로 진성 실업과의 사이에서 일어난 일들에 관해 오교수에게 상세히 보고했다. 오교수는 이야기를 듣는 내내 잘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곤 하다가, 유진의 보고가 끝나자 입을 뗐다.

“김재명 회장께서 성장기에 겪은 일들 때문에 엘리트주의적 교육에 강한 신념을 갖고 계신 것 같아.”

“회장님께서 무슨 일을 겪으셨길래요?”

호기심을 주체할 수 없는 유진에게 오교수는 김회장의 특이한 성장 과정에 관해서 알고 있는 바를 말해줬다. 김회장 자신이 굳이 비밀로 부치려 했던 것은 아니지만, 김회장의 양부가 일본 패전 직후에 문부성 관리로 미군에 부역했던 사실, 또 김회장이 미군 사령부에서 근무하다 미군을 통해서 한국으로 귀환할 수 있었던 사실 등에 관해서는 아는 이가 거의 없었다. 그의 대미 커넥션은 정·재계에 풍문만 돌고 있을 뿐, 그 누구도 정확히 알고 있노라고 나서는 이 없는, 일종의 베일에 가려진 사안이었다.

“김회장께서 몸소 겪었던 전후 일본의 미국 점령군 개혁 정책은 그야말로 획기적인 것이었지. 1945년까지 고속질주해온 ‘대일본제국’에 급브레이크를 거는 엄청난 프로젝트였어. 그래서 많은 사가들은 이때를 기점으로 일본 역사에 단절이 일어났다고 봐. 하지만 좀더 긴 시점에서 바라보면, 미군이 1952년의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일본에 주권을 돌려준 이후에, 아니 실은 그 이전인 한국전쟁 발발 시기부터, 급변하는 동아시아 정세 속에서 일본은 이미 미군의 개혁 조치들을 조금씩 무효화시키기 시작했고, 결국 1960년대를 거치면서 일본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1945년 이전의 제국주의적 요소들이 꽤 많이 복권돼버린 거야. 이런 측면을 볼 때엔 1945년의 외세에 의한 개혁이 완전한 단절을 이루어낸 것이 아니고, 따라서 일본 제국주의시대의 역사적 흐름이 전후에도 연속성을 보인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

교육만 놓고 볼 때에도, 미국적 교육을 모델로 했던 전후의 급격한 개혁에도 불구하고, 70년대에 이르러선 일본의 교육이 미국과는 거의 닮은 면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주 일본적인 개성을 회복시켜 놓았거든. 헌데 재미있는 건, 이와 비슷한 일이 정도의 차이는 꽤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났다는 점이야. 물론 우리나라에선 해방 후에 진주한 미군정이 일본에서와 같이 엄청난 개혁을 할 의도 자체가 없었지만, 우리나라도 나름대로 미군과 친미파 한국인들이 합작해서 미국교육을 모델로 삼아 새로운 국가교육체제를 수립했잖아. 그런데 처음에만 미국을 모델로 삼았을 뿐, 세월이 흘러가다보니 한국의 교육도 미국교육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으로 변모하고 말았다 이거야. 그게 어떤 모습이냐 하면, 바로 일본의 모습과 흡사해져버린 거지. 고도로 중앙집권화된 국가주의적 교육행정 및 정책, 극심한 대입경쟁, 고난이도의 대량의 정보를 교사중심적 강의를 통해 주입식으로 암기하는 교육과정, 권위주의적 상하관계, 사제관계 등등, 전 세계에서 한국만큼 일본과 흡사한 공교육체제를 운영하고 있는 나라는 없잖아.”

“그러면 교수님께서는 2차대전 이후의 동아시아에서는 교육에 국한해서 볼 때 미국의 제국주의적 침략이 노골적이지 않았다고 보시는 겁니까?”

준혁의 물음에 오교수는 싱긋 웃었지만, 그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난 2차대전 이후에 미국의 문화제국주의적 침투가 전 세계에서 지속적으로 진행돼왔다고 봐. 하지만, 그것이 노골적인 예는 그다지 많지 않아. 은연중에,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지. 또 때로는, 아니 많은 경우에, 미국의 문화제국주의적 영향을 받는 나라의 국민들 스스로가 그것을 적극적으로 원하기도 했어. 특히 교육에 있어서는! 미국이 언제 강제로 자신의 교육 시스템을 남한에 이식한 적이라도 있나? 일본에선 그랬지, 전후 독일에서도 그랬듯이. 하지만 한국은 사정이 달라. 한국인들이 자발적으로 스스로 원해서 가져왔던 거야. 그걸 미국은 못 이긴 척하고 거들어준 거지, 한미교육사절단 같은 걸 만들어서 말이야.”

“그럼, 노골적이진 않아도 문화제국주의는 작동했다고 보시는 거죠?”

“응. 단 책임소재는 미국에만 있는 게 절대 아니지. 우리가 나서서 ‘웰컴 유에쓰에이!’ 했으니까. 아직까지도 그러고 있지만.”

“책임소재라고 말씀하시는 걸로 봐선, 교수님께서는 미국의 문화제국주의가 침투된 것을 좋게 보시지 않는가 봐요.”

유진의 감성적 관찰을 오교수는 긍정했다.

“맞아, 내가 폐쇄적인 국수주의자거나 민족주의자라서가 아니라 - 알다시피 난 미국 물에 찌든 애너키스트잖아 -, 미국 문화나 교육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크게 잘못됐다고 평가하기 때문에 미제 수입을 비판하는 거야. 문화란 항상 변하는 것이고, 그 변화는 자국 내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언제나 외부로부터의 영향을 흡수하면서 일어나거든. 우리나라의 교육적 전통 또한 마찬가지지. 조선의 유교 교육이 어디 한반도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거던가? 같은 맥락에서 난 시대적 필요에 따라 미국 것이든, 서양 것이든 필요하면 흡수해서 활용하는 것이 그 자체로 이상할 건 전혀 없다고 봐. 하지만 우리는 미국식 교육이란 걸 모방하면서 너무 서둘렀고, 무지했고, 현명하지 못했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과오를 너무 많이 저질렀어. 그 과정에서 우리가 원래 갖고 있던 전통적 교육유산은 거칠게 내다버렸고 말이야. 이젠 그것을 비판적으로 반성해야 할 시기가 왔지.”

“그럴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미국교육이란 걸 도입해서 민주주의도 더 배웠고, 서구식 세계관과 과학적 지식도 습득했고, 이모저모로 나라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요?”

“도움이 안됐다는 말이 아니야. 퍼부은 노력과 자원에 비해서 지나치게 효용성과 효율성이 미약했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예를 들자면, 해방 직후에 미국식 교육의 웍샵(workshop), 아 그래, 워크숍이란 게 남한에 퍼졌어. 그런데 이걸 제대로 이해하는 한국 교육자는 전무했고, 따라서 워크숍이란 제도적 형태만 유지됐을 뿐, 미국 본토에서 웍샵이 수행했던 기능은 운용하지 못했지. 이걸 꽃나무를 이식하는 것에 비유해볼까? 자, 내가 들판에서 예쁜 꽃을 보고는 그것을 우리 집에다 옮겨다 놓고 싶어졌어. 만약에 그 꽃봉오리만 싹둑 잘라서 집으로 가져오면 그 꽃이 얼마나 갈까? 당연히 금세 죽지. 그러면 줄기까지만 가져오면 될까? 아니란 말야, 그 꽃을 우리 집에서도 살게끔 만들기 위해선 그 꽃 전체를 땅에서 뽑아서 가져오는 수밖에 없어. 자, 꽃을 웍샵이라고 볼 때, 그 꽃의 줄기와 잎, 그리고 뿌리는 웍샵이라는 교육적 실천의 바탕이 되는 주관자의 역량, 교육행정체계, 재정적 지원, 축적된 노하우, 참여자들의 이해수준 등등을 비유한다고 할 수 있겠지? 웍샵 하나를 성공시키기 위해선 미국교육의 이런 모든 영역들을, 시스템을, 통째로 다 수입해야 한다는 말이야.

그게 다가 아니야. 우리가 나무를 이식할 때 뿌리를 좍 뽑아오지는 않지? 뿌리가 박혀있는 흙까지 조심스레 떠오잖아. 흙이란 무엇이냐? 바로 웍샵이라는 교육적 실천을 꽃피운 교육 시스템이 뿌리박고 있는 미국의 사회와 문화라는 토양이지! 그 토양은 이해 당사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서 민주적인 의사소통 과정을 통해 그때그때 필요한 신지식을 주고받는 비공식적인 학습과정인 웍샵을 가능케 만드는 미국사회의 분위기 자체야. 우리가 그런 분위기까지, 즉 토양까지 함께 떠올 수가 있겠는가? 물론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 내말은, 타문화 사이에 제도적 이식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타문화권의 제도를 제대로 이식해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어서, 철저한 준비와, 이해, 그리고 종합적으로 시스템 전체를 고려하지 않고는 성공하기가 어렵다는 말이야.

그런데 해방 이후로 우리는 이런 걸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 언제나 서둘러서 황급하게, 생각도 안 해보고 미국식 교육방식을 수입하기에만 급급했지. 물론 낙후됐던 당시의 상황을 고려해볼 때, 그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바야. 하지만 이것을 1990년대 이후에도 계속 해오고 있다는 건, 이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어. 미국 것이면 무조건 좋다고 믿고, 무비판적으로 수입해서 써먹는 건, 정말 무지막지한 일이 아닐 수 없어. 너무도 당연한 거지만, 미국 거라고 해서 다 좋은 건 정말 아니거든!”1)

준혁이 거들었다.

“옛, 저도 찬동합니다! 교육제도 같은 건 당연히 한국에서의 적합성을 신중히 따져보고 도입하도록 해야겠죠. 그런데, 교수님, 우리나라에서는 교수님 떠나신 뒤로 영어교육 가지고 또 한바탕 난리가 났었습니다. 영어가 중요한 걸 부인할 사람은 없지만, 공교육기관에서 모든 수업을 영어로 한다는 몰입식 교육이 과연 좋은 걸까요? 영어가 그렇게까지 중요할까요?”

“Well, well, well, to be frank, it is!”

오교수의 영어 답변에 준혁이 잠시 쭈뼛거리자 유진이 간섭했다.

“얘, 중요하다는 말씀이셔.”

“나도 알아들었거든!”

“내가 아는 미국대학에 근무하는 한 한국인 교수는 이렇게까지 말하더군. ‘Speak English, or die!’라고. 너무 심한가? 글세, 미국서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그게 맞는 말이지. 헌데 한국에서도 그래야 하는가? 글세, 그도 어느 정도는 맞겠지만, 전적으로 맞는 얘기는 아닐 거라고 봐. 5천만이 다 영어를 써야만 하는 건 아니니까. 물론, 현재 한국 사람들이 워낙 영어에 약하니까 어느 정도는 영어교육방식이 업그레이드 돼야겠지. 하지만 학교의 전 과목을 영어로 가르친다는 건 실효성은 차치하고라도, 심각한 폐해를 유발할 소지를 안고 있어. 우리가 영어를 배워서 간단히 쇼핑이나 하고 길이나 가르쳐주는 수준이 아니라, 실제로 외국인과 깊이 있고, 수준 높은 대화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실은 영어 이전에 기본적인 모국어 구사능력을 습득해야 하거든. 우리말을 잘 해야 영어도 잘 하는 거야. 그런데 성장기에, 특히 너무 유아기 때부터 영어만 강조해서 모국어 발달이 저해되는 경우, 그 폐해는 결코 훗날에 만회할 수가 없어. 왜? 언어습득능력에도 다 연령에 맞는 단계가 있기 때문이지. 물론 소수의 언어 영재들은 얘기가 다르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일단 모국어를 확실하게 배우고 나서, 초등학교 중간 단계쯤부터 서서히 영어로 듣고, 말하는 연습을 시작해도 결코 늦지 않아.”

“저도 초등2학년 때부터 영어 비디오 보기 시작했는데요, 문법 책 같은 것 제대로 본 적 한 번도 없구요, 나름대로 꾸준히 열심히 했더니 영어가 들리고, 말문도 트이던데요.”

유진의 말에 준혁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한 마디 보탰다.

“지는요, 깡촌에서 크느라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영어 비디오, 영어 듣기, 이런 걸 해본 적이 없어서, 여직 이래 영어에 스트레스 받고 사는가 봅니다.”

“그래, 나도 어려서부터 영어에 완전히 손놓고 있으란 게 아니라,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지도가 병행되면, 자라면서 충분히 기본실력을 쌓을 수 있다는 말이야. 그렇게 성장해서 고등학생 쯤 됐을 때, 아, 나는 앞으로 무역을 꼭 해야겠다든지, 아니면 외교관이 돼야겠다고 장래희망을 세우게 될 때쯤에, 각 개인의 희망에 맞게 보다 심도 높은 영어 훈련을 제공한다든가, 아니면 한 일 년 쯤 외국에 교환학생으로 보내준다든가, 뭐 이런 선별화된 제도를 만드는 게 더 바람직하지 않겠나?”

두 젊은이는 영어몰입교육 보다는 오교수의 절충안 쪽을 더 마음에 들어 했다. 오교수는 식후에 리필된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대개 전통주의자나 민족주의 진영에서 영어몰입교육이라든가, 영어공용화론 등을 극렬하게 반대하잖아. 나도 그런 주장들에 반대하는데, 어찌 보면 반대하는 이유가 전통주의자들과 비슷해, 표현방식은 다르지만. 나는 한국인들이 영어를 쓰면서 살다보면, 한국인의 생각과 정신과 마음도 미국식으로, 영국식으로 변할 것이라고 믿어. 과연 우리의 정신이 미국화, 영국화 되는 게 진정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일까? 내 경우엔 그게 결코 아니란 말야. 하지만 내가 맨날 영어만 쓰며 살고 있을 때, 내 정신이 탈아입구(脫亞入歐)2)하게 되는 걸 나도 막을 도리가 없어. 자네들 날 보고 미국 물 너무 많이 먹었다고 그러지? 뭐가 아니야, 나도 다 알아. 미국서 영어만 쓰고 살아봐, 미국인 안 되나.

난 살아있는 동안은 한국인이라는 내 개성을 잘 간직하고 활용하고 싶거든. 한국인으로서 사유하기 위해서는 한국어로 말해야 해. 이점에서 나는 하이데거에 동의해. 사유가 언어를 지배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언어가 사유를 지배한다고 그가 말했지. 언어가 마음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우리 존재의 심연인 마음에서 피어오르는 언어가 생각을 불러오는 것이지, 생각이 언어를 도구로써 사용하는 게 아니라는 거야. 우리는 보통 언어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잖아. 허나 그렇지 않아, 내 존재의 심연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에 대해 내가 말을 엮어내고, 언어가 엮어지는 과정이 비로소 사유를 일으키는 거야. 이건, 사유의 근원에 마음이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아.”

“교수님 말씀을 들으니 장원 선생님 말씀이 떠오르는데요. 장선생님께서도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 하시면서, 태어나서 자라난 지방의 사투리를 쓰는 것이 자신을 잃지 않는 길이라고 하셨던 것 같아요.”

“그 친구 얘긴 좀 치우친 면이 없지 않지만, 뭐, 기본적으로 걔나 나나, 하이데거식의 유식학적 지평에서 존재론적 얘기를 하고 있는 건 매한가지야.”

“네? 유식학이요? 존재론적? 너무 난해한 용어들이에요...”

오교수의 말을 듣고 유진이 난감해 하자 준혁이 끼어들었다.

“유식학은 불교의 마음철학 분야인데, 나도 하이데거 같은 서양 철학자들의 사유가 유식학에 접근해 있다는 얘길 들어본 적이 있어. 교수님께선 불교철학에 관심이 있으신가 보죠?”

“우리 눈을 밝히는 데 도움을 주는 것들엔 다 관심이 있지.”

“솔직히 의외인데요. 제가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동양사상에 관심이 많으신가 봅니다.”

그렇게 말하는 준혁에게 유진이 물었다.

“얘, 넌 왜 강원도민이 강원도 사투리 안 써?”

“뭐? 사투리? 참 나, 내가 맨날 쓰는 게 사투리잖아, 남조선 사투리!”

“흥, 미꾸라지 같이 빠져나가긴.”

“자, 준혁군, 강원도 사람이 감자 남기지 말고 다 먹지 그래.”

유진이 과장된 표정으로 눈을 크게 뜨며 준혁을 힐끗 보고는 외쳤다.

“교수님! 아니, 그런 지역감정 유발성 발언을 하시다니!”

준혁이 감자를 포크로 푹 찌르며 말했다.

“야, 그냥 ‘감자바위야’ 그래라, 아예. 교수님께선 아무 의도 없이 하신 말씀을...”

그러자 오교수가 이렇게 말했다.

“자, 강원도 감자바위 총각, 감자 마저 먹게나.”

당혹한 표정의 준혁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오교수가 말했다.

“뭘, 재미있잖아.”


1)
타문화권 간의 사회제도의 이식에 관한 사례연구로 일본이 메이지 시대에 서구의 제도를 수입했던 복잡다단한 과정을 산뜻하게 정리, 예시한 Westney의 저술이 보강원고 20 주 3)에 소개돼있다.

2) 일본의 개화기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가, 일본은 아시아를 벗어나서 서구를 지향하자는 뜻으로 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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