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헤게모니


“자, 유교교육에 대해서 서양인의 시각보다도 더 차갑게 한 번 봐볼까? 자네의 써머리에서 유교가 체제유지를 위한 이데올로기 기능을 했다고 했지? 그걸 이태리 공산주의자인 그람쉬의 히줴머니, 암..... 그러니까, 우리말로 헤게모니라는 개념을 빌려서 보면, 보다 더 음험한 지배계층의 계략이 드러날 수도 있어. 자, 조선시대의 지배계층인 사대부들은 유교의 상하 위계질서라는 틀을 갖고 차별적 신분제에 기초한 권력구조를 공고히 하는 한 편, 과거제도라는 표면적으로 평등주의적으로 보이는 장치를 마련해둠으로써 백성들에게 신분제가 열린 체제라는 환상을 심어주었다고 할 수 있지 - 자네 지적대로 웬만한 농민으로선 자식을 과거 시험 준비생으로 뒷바라지 해주기가 어려웠으니까. 헌데 공식적으로 과거는 모든 상민(常民)들에게 오픈돼있었으니까 백성들은 내 자식도 열심히 공부만 한다면 공직에 진출할 가능성이 있고, 따라서 기존 체제는 정당하다고 인정해주게 돼지. 그래서 피지배계층인 상민들도 과거제도를 주축으로 삼는 이 교육 시스템에 자발적으로 함께 가담하게 돼. 가담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이 시스템의 이데올로기인 유교를 내면화하게 되고, 유교적 정신과 이념을 받들게 돼서 기존의 상하질서를 긍정하게 되고, 그래서 결국 체제옹호세력이 된다는 거야. 한 마디로 감언이설에 솔깃해서 자신에게 아무 이익도 주지 않는 양반들 잔치에 들러리나 서게 되는 것 아니겠어. 그 덕에 기득권층인 양반들만 더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게 되고.”

“그런 일이 그렇게 쉽게 일어났을까요? 세월이 흐르다 보면 아무리 무지한 일반 백성들이라도 그 ‘시스템’이 자신들에게 아무런 이익이 못된다는 걸 알 수 있지 않았을까요?”

유진의 의구심 섞인 질문에 대해 오교수가 바로 답했다.

“물론, 니오막시스트(Neo-Marxist)적인 비판의 틀에 우리의 역사를 억지로 끼워 맞출 수는 없지. 하지만 헤게모니란 개념은 꽤 매력적이야, 실은 지금 이 시대에도 꾸준히 일어나고 있거든. 일례로, 우리나라 사람들 골프 좋아하지? 한국 처녀들이 해외 대회에서 1등을 하면 전 국민이 열광하곤 하잖아. 그럴 때마다 골프인구의 저변을 확대하여 국위선양 해줄 세계적인 선수들을 더 많이 양성하기 위해 전국에 골프장을 더 많이 건설하고 레저산업을 육성해야 된다는 언론의 바람잡기가 성행하고. 그런데 과연 한국은 더 많은 골프장을 필요로 할까? 그게 대다수 국민들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일일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주변의 많은 이들이 골프를 즐기는 것을 어릴 때부터 보고 자라온 유진으로서는 오교수의 질문이 언뜻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녀의 의아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교수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한국 사회에 골프 인구가 급증해서 이른바 골프 대중화 시대에 접어들었다고들 하는데, 과연 한국 인구의 몇 퍼센트나 골프를 즐길까? 혹시 머조리티(majority), 그러니까 과반수이상의 대다수 인구는 평생가야 골프장 한 번 가볼 일 없는 사람들이 아닐까? 골프는 한국의 여건상 여전히 매우 비용이 많이 드는 스포츠야. 소비자 입장에서 볼 때 부유한 소수만이 즐길 수 있는 스포츠지. 게다가 골프장 건설이라는 것은 한국 상황에서는 매우 부적절한 일이 아닐 수 없어. 이 땅에 어디 골프 칠 만한 드너른 평원이 있나? 국토의 70%가 산인데, 골프장을 지으려면 멀쩡한 산을 깎거나, 있는 전답을 갈아엎을 수밖에 없는 일이잖아. 둘 다 바람직한 일이 아냐. 산을 깎으면 생태계 파괴는 자명한 일이고, 그것이 단순히 금전적으로만은 환산할 수 없는 심대한 피해를 우리의 땅과 생명에게 끼칠 것이라는 걸 설명할 필요까지야 없겠지. 또 골프장을 지으면 잔디를 유지하기 위해서 엄청난 양의 농약을 살포해야 해. 이것 역시 생태계와 지질, 수질에 악영향을 끼치지. 게다가 골프는 모든 종류의 산업들 중에서 단위면적당 물 사용량이 최대인 산업이야. 우리나라가 ‘물 부족 국가’로 분류된 지 오래라는 사실을 우리 국민들은 까맣게 잊고 있나봐.”

오교수는 나지막한 음성으로 숨도 안 쉬고 자신의 주장을 펼쳐나갔다.

“내 말은, 골프장 확충이 대다수 우리 국민에게 이익은커녕 피해만 잔뜩 안겨줄 소지가 명백하게 보이는 일이란 거야. 그걸 통해서 이득을 챙길 사람들은 이른바 레저산업에 투자한 부자들, 즉 기득권층이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우리 국민들은 한국 선수들이 국제 골프시합에서 우승하면 그걸 대서특필하는 보수 언론매체들과 덩달아서 열광하곤 한다구. 이거야 말로 민중이 스스로, 자발적으로 소수 지배계층의 이익을 옹호해주는 형국 아니겠어? 이런 걸 보고 지배계층이 헤게모니를 장악했다고 하는 거야. 조선의 우매한 민중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니야, 현재도 계속 일어나고 있어.”

사회지도층 인사들과 유유히 필드를 거닐며 골프채를 휘두를 것으로 보이는 오교수가 이렇듯 골프 반대론을 펴는 것이 예상 밖이라 유진이 물었다.

“저... 그럼 교수님께선 골프 안치시나요?”

“나 안쳐.”

유진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 그러세요?”

“학자가 골프 칠 시간이 어딨어? 내가 골프 좋아하면 이런 소리 하겠나? 하하.”

뒷부분 말은 농담이라는 것을 유진도 알아차렸다. 골프 칠 시간도 못 낼 만큼 바쁜 학자임이 사실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골프라는 스포츠가 본질적으로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야, 단지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볼 때 골프는 너른 초원이 자생해있는 지역에서 즐긴 스포츠이고, 그래서 미국의 프레이리나 오스트레일리아의 벌판에서 골프를 즐기는 것에 대해 시비를 걸 생각은 전혀 없어. 다만 우리의 국토에서 골프장을 많이 지을 때 국민 전체를 위해서는 득보다 실이 훨씬 많다는 것뿐이지. 그렇게 치고 싶으면 가까운 해외에 가서 치면 또 어때? 해외에서 쳐도 될 사람들을 굳이 국내에 잡아두자고 골프장을 건설하자는 작자들의 의중에 과연 나라를 생각하는 동기가 일말이라도 있을지 난 의심스러워. 뭐 확실한 실증적 근거가 충분히 있는 건 아니지만, 나는 이런 헤게모니를 통한 기존 계급구조의 강화가 조선시대에도 횡행했을 것이라고 생각해. 물론, 내 추측이 빗나갔을 가능성도 있지만.”1)



조선의 여성


물 한 모금을 마신 오교수는 이야기를 계속 했다.

“ 헌데 내가 유교교육에 대해 불만인 점은 이런 이데올로기적 조종술보다도, 여성을 교육으로부터 철저히 소외시켰다는 점에 있어. 조선시대에는 고려시대에 비해 여성의 지위가 대폭 하락한 것으로 보여, 가문 안의 지위를 보나, 재산권, 참정권 등을 보나. 여성을 위한 정식 교육기관은 전무했고, 집안에서 여성을 교육한다 해봤자 교훈서에 의존해서 여성의 4덕목이나 교화시키는 게 다였고, 전체적으로 봐서도 성리학의 보편적이라는 교육목적으로부터 여성은 철저히 소외돼있었다고 할 수 있지. 조선의 농경관료제에 터한 가부장제는 여성의 정절을 유난히 강조했는데, 이것도 다 부계중심혈통을 보존하기 위한 장치였어.”

“휴우-, 조선시대에 안 태어난 게 참 다행이로군요.”

“그래, 유진이처럼 재능 있고 특출한 여성은 그 시대에 더더욱 좌절했을지도 모르지. 자네도 지방에 여행 다니며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방방곡곡 고을마다 열녀문 하고 효자문이란 게 있지?”

“전 별로 지방 여행을 안다녀봐서.....”

“그래? 그럼 이번에 한 번 다녀와야겠군. 하여간 지방에 많이도 서있는 이 열녀문과 효자문은 조선시대에 대해서 뭘 말해주고 있을까?”

“그야... 뭐, 그 시대엔 열녀와 효자들이 많았었나 보죠?”

“그게 일반적인 생각일지는 모르지만, 사학자들은 그같은 역사적 자료에 대해 좀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예를 들어 요즘 ‘용감한 시민상’ 같은 게 있잖아, 그게 용감한 시민들이 많아서 주는 상이야, 아님 그 반대야?”

“없어서 본받으라고 주는 거겠죠.....”

“그래, 일부러 공동체의 돈과 에너지를 들여서 상을 준다거나 문을 세워 기린다거나 하는 건, 그만큼 그런 인물들이 드물다는 사실의 반증일 수 있어. 다른 말로, 충효정신과 정절을 그렇게도 강조한 조선시대에 오죽이나 열녀와 효자가 드물었으면 굳이 없는 돈 들여 그런 기념물들을 세우고 희귀한 열부, 효자를 기렸을까?”

“사학자들은 좀 안으로 꼬인 분들인가 보네요.”

“아, 그렇지 않은 사학자들도 많고. 물론 열녀문에 대한 이 꼬인 시각도 일일이 사료로써 ‘실증적으로’ 입증된 문제는 아니야. 하지만 실은 보편적 인간애를 주창한 유교정신을 받든다는 조선의 지배계층이 여성의 생명과 권리에 대해서는 위선적인 태도를 갖고 있었다는 근거들은 꽤 있어. 여기 내가 좋아하는 한 학자의 글이 있으니까 읽어봐.”

오교수는 유진에게 복사한 것으로 보이는 종이 한 장을 건네줬다. 유진은 권유받은 대로, 복사된 글을 읽어봤다:


자살 권한 조선시대 윤리책 명저에 포함시킨 건 난센스


근자에 인터넷 자살 사이트가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사람이 제 목숨을 제 손으로 끊는 것보다 흉측한 것은 없으리라. 자살을 권유하거나 자살 방법을 가르치는 것은 어떤 절실한 이유를 대어도 납득하기 어렵다. 그런데 만약 이 상식에 어긋난 일을 버젓이 가르치는 책이 있다면 어찌할 텐가?

현암사에서 오래 전에 나온 '한국의 명저'란 책에 '오륜행실도'가 명저의 하나로 소개돼 있다. 세종 때 엮어진 '삼강행실도'와 중종 때 김안국이 이륜(장유유서, 붕우유신)에 대한 이야기를 모은 '이륜행실도'를 정조 때에 합쳐서 펴낸 책이다. 한데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오륜행실도'의 원형인 '삼강행실도'다. '오륜행실도'가 명저라면, 당연히 그 원형인 '삼강행실도'도 명저일 터이다. 삼강은 알다시피 신하의 임금에 대한, 자식의 어버이에 대한(주로 아버지), 아내의 남편에 대한 윤리, 곧 충․효․열을 말한다. 이 책은 세종 10년에 김화란 사람이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이 계기가 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세종은 이 살부사건에 충격을 받아 백성을 교화할 윤리서의 제작을 명했던 것이다. 곧 중국과 우리나라의 충신, 효자, 열녀의 사례가 수집됐다. 4년 뒤 각각 1백 10건의 사례가 수집됐던 바, 한문을 모르는 백성을 위해 그림까지 붙여 간행했다. 조선조는 백성들에게 책을 만들어주는 데 매우 인색했으나, 이 책만은 조선조 말까지 국문으로까지 번역해 여러 형태로 전국 각지에서 인쇄, 보급했다.

이 책은 윤리와 도덕을 가르치는 엄숙한 책이지만, 정작 내용을 보면 참혹하기 이를 데 없다. 효자편에 실린 효자들은 아버지를 위해 한 겨울에 앵두를 찾아 혹한 속을 헤매는가 하면, 손가락을 끊고(斷指), 넓적다리 살을 칼로 서슴없이 베어내고 있다(割股). 나는 부엌에서 무딘 칼로 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내고 피를 흘리면서 고통에 떠는 자식을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진다. 곽거란 사람은 철없는 어린 자식이 어머니의 음식을 먹는다고 땅에 묻어 죽이려 했다. 비합리성과 잔혹성으로 점철된 것이 '삼강행실도'의 내용인 것이다.

효자편은 열녀편에 비하면 그래도 약과다. 열녀편의 열녀 1백10명 중에서 자살이거나 타살이거나 죽음으로 열녀가 된 사람은 80명이다. 죽지 않은 열녀 30명은 왕비 같은 고귀한 신분이다. 효자편에서 죽음으로 효자가 된 남성은 겨우 5명이다. 엄청난 차이가 아닌가? 실례를 보자. 중국의 취가란 여성은 반란군이 남편을 잡아 삶아먹으려 하자, 자신이 아마도 더 맛이 있을 것이라면서 대신 삶겨 반란군의 배를 채웠다. 장천석이란 사람은 첩 염씨와 설씨에게 자신이 죽으면 너희들은 어떻게 할 텐가 라고 묻는다. 두 사람은 죽음으로 보답하겠노라고 대답했다. 어느 날 남편이 병들어 죽을 것 같자, 두 사람은 정말 미리 목숨을 끊었다. 남편은 뜻밖에도 병이 나아 살아났다. 애매한 목숨 둘만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 내가 과문한 탓인지 아내를 대신해 죽은 남편의 이야기는 여태까지 어떤 책에서도 보지 못했다. 불공평하다 못해 씁쓸하기조차 하다.

조선시대 열녀담 중에서 겁탈을 당해 저항하다가 죽음을 택한 것은 그래도 조금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어린 자식이 있고, 주위에서 만류하는 데도 불구하고 남편을 따라 죽는 것은 정말 납득하기 어렵다. 조선시대는 열녀는 오로지 죽음, 자살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조선시대 문헌에는 열녀 이야기가 숱하게 전한다. 학생들과 함께 문화유적을 답사하면 열녀각이 없는 지방이 없다. 열녀는 조선시대에 흔한 바는 아니지만, 결코 드문 존재도 아니었다. 한데 타고날 때부터 죽어야만 '열(烈)'을 이룬다는 것을 알았던 사람이 있었을까? 열녀가 되기는 오로지 후천적인 학습에 의한 것이고, 그 학습의 교과서가 바로 '삼강행실도'였던 것이다.

옛 책이라 해서 과연 다 귀하고 소중할까? 나라에서 윤리도덕을 구실로 삼아 여성에게 자살을 권하고 자살의 방법을 가르치는 책이 무슨 명저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지금이라고 어디 그런 책이 없을까? 똑똑히 가려내어 속지 않아야 할 것이다.

-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중앙일보 2002.9.14)



복사된 글을 다 읽은 유진이 오교수를 쳐다보며 말했다.

“암튼 조선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게 천만 다행이라니까요, 교수님.”

오교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요즘 말로, ‘엽기 윤리서’라고 할 수 있겠지. 강명관 교수가 알려준 이런 끔찍한 교훈서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결코 윤리관이 강권적인 교화, ‘indoctrination'을 통해서 내면화되지 않는다는 거야. 삼강행실도나 열녀문이나 다 유교적 윤리의 가치관을 교화 작용을 통해 백성들에게 주입하려는 기도에서 구축된 장치들일 터인데, 그런 가치관을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내면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교화의 기도가 억압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을 거야. 이는 유교가 그렇게 조선을 지배했음에도 불구하고 유교가 조선 땅에 완전히 토착화되지 못했음을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단서가 될 수도 있어. 유교가 억압을 통해서 윤리적 가치관을 강요했던 데 비해서, 백성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애환을 달래주는 역할을 한 2류 종교가 있었지. 점, 사주, 역학, 관상, 풍수 등등, 우리가 흔히 무속이라고 부르는 샤마니즘 전통이 그거야.”

“흠..... 그렇게도 볼 수 있겠군요. 무속은 여전히 많은 한국 사람들의 의식 밑바닥에 남아있으니까요. 하지만 유교 역시 한국인의 의식 심층에 단단히 자리 잡고 있지 않은가요? 우리가 장유유서 무시하고는 이 사회에서 살 수 없는 거나, 무엇보다도 부모님께 효도 하지 않으면 엄청난 죄책감에 괴로워하거나 하는 것들이 다 유교적 태도 아닌가요? 뭐, 여전히 여성을 비하하는 사회문화까지도 말예요.”

유진의 의견을 오교수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래, 자네 말이 맞아. 유교건 샤마니즘이건 다 우리 의식 깊은 곳에 남아있을 거라고 나도 생각해. 그렇다면 이제 유교가 우리의 교육에는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남아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그것에 앞서 하나 생각해볼 게 있어. 우리가 지금까지 말이야, 유교와 유교교육에 대해서 오직 부정적인 요소들만 골라내서 얘기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좀 그런 것 같기도 한데요..... 그렇다면 긍정적인 것들로는 뭐가 있을까요?”


1) 골프장 건설 난립과 생태 및 주거 환경 파괴에 관한 제주도의 이야기도 경청해볼 가치가 있다. 2007년 9월, 제주도는 소형 태풍 ‘나리’에 강타를 당해, 하루 500mm가 넘는 집중 호우 속에서 13명이 죽고 1600대의 자동차가 못쓰게 되는 등, 2000억원이 넘는 재산피해를 냈다. 제주대학교의 철학교수인 윤용택은 일간지에 기고한 글에서 이 같은 엄청난 피해가 단순히 전지구적 기후온난화에 기인했다기보다는 인재(人災)의 측면이 강하다고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제주도는 화산섬이어서 토양의 물 빠짐이 좋고, 한라산을 기점으로 해안까지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어 비가 많이 오더라도 자연스럽게 바다로 잘 빠지기 때문에, 예전에는 아무리 큰 비가 와도 주택이나 농경지가 침수되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중산간에 골프장이 수없이 들어서고 무분별하게 도로가 개발되면서 기상이변에 대한 대처 능력이 떨어지고 있다. 제주도에는 현재 20여 개의 골프장이 운영 중이고, 건설 예정인 것까지 합치면 39개나 된다. 지하수 저장고 역할을 하던 울창한 곶자왈(숲)에 골프장이 들어서게 되면 물을 머금을 수 있는 보습력은 수십 분의 일로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 골프장에 내린 빗물은 땅으로 스며들지 못하기 때문에 하천이나 저지대로 배출되는 빗물의 양은 이전보다 훨씬 더 많아진다. 반면에 골프장 잔디는 이틀에 한 번씩 1000t씩의 물을 뿌려 줘야 하므로, 제주도는 수많은 골프장 때문에 집중호우와 극심한 가뭄에 대단히 취약하게 된다. 그리고 제주도는 그동안 많은 도로를 확장하면서 곡선 도로를 직선화시키고, 높은 지역은 깎고 낮은 지역은 메워서 도로를 평탄화했다. 그리하여 전국 제일의 도로 천국이 되었다. 하지만 그 결과 이번처럼 집중호우가 내리게 되면 도로(道路)가 수로(水路)로 변하고, 자연스럽게 잘 빠지던 물길을 가로막아 상습 침수지역을 많이 만들어 놓은 셈이 되었다.” (중앙일보, 2007.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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