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듀이의 실험학교

여기까지 말하고 오교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우리 듀이 투어 코스에 나서볼까?”

“예? 그런 것도 있나요?”

“Of course! 듀이의 베이스캠프까지 왔는데 그 정도 써비스는 있어야지.”

오교수는 유진을 데리고 연구실 밖으로 나갔다. 복도를 가로질러 1층으로 내려가서는, 1층 복도의 한 쪽 끝에 있는 문을 여니, 옆 건물로 옮겨가는 통로가 나왔다. 교육학과 건물에 붙어있는 실험학교(Lab School)로 직접 통하는 문이었다.

“여기가 랩 스쿨이야. 지금은 봄방학 중이라 애들이 없으니까 다음 달에 다시 와서 한 번 구경하자.”

유진은 호기심에 눈을 반짝이며 랩 스쿨 복도를 걸어갔다. 정말로 백 년도 넘게 돼 보이는 전통 석조건물 안에 어린 학생들의 대단히 재기발랄한 그림과 글, 그 밖의 전시물들이 자유분방하게 전시돼 있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옛 것과 새 것이 만나서 사이좋게 함께 있는 것 같았다. 학생들 전시물이 많이 걸려있는 복도를 지나 왠지 행정부 같은 분위기가 풍기는 방 앞에 와서 오교수가 말했다. 교장실 앞이었다.

“듀이가 처음 이 학교를 시작했을 때에는 그야말로 ‘실험’ 학교였지. 애들이 맨날 목공이나 하고, 길쌈이나 하고, 그랬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그다지 실험적이진 않아. 굉장히 엘리트주의적인 학교가 돼버렸거든. 최근의 통계를 보면, 랩 스쿨이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입학률이 가장 높은 중등학교 중의 하나야. 귀족학교지. 시카고대 교수들은 다 자기 자녀들을 이리로 보내고.”

오교수 말을 들으며 교장실 앞의 게시판에 붙어있는 ‘Director's Message’를 열심히 읽고 있던 유진이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와, 여기는 교장 선생님 훈화도 되게 세련됐네요. 지난해에 하버드에 몇 명이 붙었니, 뭐 이런 얘기는 하나도 없고,  몇 십 년 전에 여기를 졸업한 흑인 여성이 이 학교가 얼마나 자기의 인생에 도움을 줬는지 알려온 얘기를 교장 선생님이 여기에 써놨네요. 그 도움이 됐다는 것도, 좋은 직장을 구하고 그런 게 아니라, 얼마나 열린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열정을 갖고 지식을 습득하고, 그런 것들에 랩 스쿨이 도움을 줬는가 하는 얘긴데요. 부럽네요.”

“너무 부러워 할 거 없어. 투자된 비용 대비로 따질 때 여긴 사실 거의 세계 최상급의 학교거든. 그런 학교에서 그 정도의 성과를 보이지 못한다면, 그게 오히려 더 큰 문제겠지.”

“그래두요! 이 학교가 강조하는 게 단지 세계 최상급이 되자는 게 아닌 것 같잖아요! 어쩌면 아까 말씀하신 ‘성인을 꿈꾸는 사회’를 지향하는 것 하고 비슷하지 않나요? 듀이 철학의 중요한 면모를 간직해온 것 아닌가요?”

“호오, 자네는 초면에 이 학교를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해주는군. 좋아, 그건 자네가 알아서 해. 그럼 자네가 보기엔 이 학교가 듀이의 이상을 전수하고 있는 것 같은가?”

“하하, 그거야 제가 알 도리가 없죠. 제가 랩 스쿨에 대해 뭘 안다구요.”

“흠, 솔직함을 빌미로 내 질문을 무효화시키는 술수를 쓰는군.”

“네에? 왜 자꾸 저를 갈구시는 거죠? 전 그저 무식할 뿐인데요...”

“무식한 게 자랑이냐? 아, 됐거든! 우는 척 할 필요 없어.”

오교수는 점점 더 유진을 깔아뭉갰다. 유진은 혹시 이것이 의도적이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운다고 불쌍히 여겨주실 사부님도 아니고...”

“그래, 잘 봤어. 예쁜 얼굴로 스승까지 구워삶을 수 있다고 생각해선 안 돼. 그건 그렇고, 아까 얘기로 돌아가자면, 그러니까 랩 스쿨은 말이야, 애초엔 자네 말대로 자아실현을 지향하는 성향을 공유하는 사람들로 학생들을 양성하려고 했겠지. 그런데 그게 장사가 안 되는 거야. 그래서 좀 노선을 수정했거든, 공부를 쎄게 시키는 쪽으로. 그래서 결국은 미국에서도 최상위권의 사립학교로 자리 잡게 됐지. 문제는 이렇게 변화한 랩 스쿨 안에 듀이의 이상이 남아있을까 하는 건데... 이게 내 생각엔 우리의 학교 프로젝트에도 의미심장한 시사점을 지니고 있을 것 같아. 그래서 이것에 대해서 나보다 높은 사람한테 찾아가서 한 번 설명을 들어보는 게 좋겠어.”

“교수님보다 높은 사람이라뇨?”

“자네 사부의 사부.”

“네? 그러면.....”

“듀이 대사부의 수제자가 컬럼비아 대학의 킬패트릭이고, 그의 수제자가 필립 잭슨이거든. 내가 소시적에 시카고에서 잭슨 교수에게 사사했지. 그리고 잭슨 교수는 지금은 은퇴했지만, 바로 이 근처에 살고 계셔.”

그날 오후 오교수는 유진을 데리고 잭슨 교수의 집을 찾았다. 오교수 또한 자신의 스승을 오랜만에 만나는 것이어서 노교수 부부의 환대를 받았다. 은퇴 후에도 여전히 듀이의 사상을 현재의 교육적 언어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멈추지 않고 있는 잭슨 교수는 유진의 학교 사업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보이며 경청했다. 그는 여러 명의 한국인 제자가 있으며, 한국을 방문했던 기억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잭슨 교수는 시카고대 재직 시에 존 듀이 학회장을 지냈고, 전 미국 교육학회장도 역임했던 미국 교육학계의 거목이다. 그는 애초에 교육과학 쪽의 훈련을 받았으나 교육활동의 계량화에 염증을 느껴 질적인 연구로 방향 전환을 했고, 그런 과정에서 철학에 빠져들었다고 했다. 그는 제자인 오교수가 자신의 관심을 물려받아 듀이적 사상을 확장해가는 것에 큰 보람을 느낀다며, 자신이 듀이를 재발견했던 때의 상황을 구수한 옛이야기처럼 들려줬다.

1960년대와 70년대를 거치면서 미국의 교육은 대체로 보수적인 교사중심적, 학문중심적 교육 담론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이른바 ‘스푸트닉 쇼크’를 겪은 뒤, 1960년대 이래로 듀이는 미국의 교육에서 잊혀진 상태였다.1) 1980년대에나 접어들면서 보다 진보적인 교육 사조가 서서히 고개를 들었고, 그에 따라 듀이의 재해석 시도도 발생했다. 당시에 시카고대 교육학과 교수로서 랩 스쿨 교장을 겸직하고 있던 잭슨 교수는 어느 날 랩 스쿨의 지하실 창고 한 구석에서 존 듀이의 흉상을 발견했다고 한다. 듀이 흉상은 지하실에서 먼지에 덮이고 거미줄이 쳐있는 몰골로 방치돼왔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흉상의 앞 쪽은 벽을 향하고 있었다 한다. 지하 골방에서 먼지에 쌓여 면벽하고 있는 듀이. 잭슨 교수는, 지난 2~30년 동안 미국이 얼마나 듀이를 홀대했던가를 바로 그 흉상의 몰골이 상징적으로 보여줬다고 느꼈다고 했다. 그는 즉시 듀이 상을 복원하여 랩 스쿨의 교장실로 옮겼고, 자신의 교장 임기가 끝난 후에는 교육학과 건물의 홀 중앙에 듀이 상을 당당히 전시했다고 한다. 비록 자신의 은퇴와 거의 동시에 교육학과는 문을 닫았지만, 잭슨 교수는 여전히 듀이가 과를 창설했던 역사적인 건물에 듀이의 흉상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또한, 그는 랩 스쿨이 자신을 나아준 아버지인 듀이를 완전히 저버리지는 않고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유진과 오교수는 잭슨 교수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유진의 뇌리에는 복원된 듀이의 흉상 이야기가 가장 인상 깊게 남았다. 잊혀진 흉상의 복원이라는 은유를 통해 잭슨 교수는 듀이적 사상의 역사적 부침이 갖고 있는 교육적 의미를 전달하고자 했던 것으로 느껴졌다.


1) 
세간에 알려져 있듯이 ‘스푸트닉 쇼크’를 미국 교육의 보수화의 원인으로 볼 수는 없고, 그 이전에 이미 진전되고 있던 교육 보수화의 촉진제적 사건으로 보는 편이 정확하다.


 

'유진의 학교' 보강 원고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