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성리학 - 理·氣, 敬 (송주황의 강의)


중국 송대의 주희(朱喜, 1130-1200)가 집대성하여 주자학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또는 신유학이라고도 불리는 성리학(性理學)은 16세기에 이황과 이이라는 두 걸출한 유학자를 거치면서 조선의 주류 학문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성리학의 형이상학적 범주라 할 수 있는 이기론(理氣論)과 인간학적 심성도야론이라 할 심학(心學)은 조선의 교육, 특히 서원교육의 주된 패러다임이 됐다. 조선교육의 근간이었던 성리학의 핵심은 결국 우주보편의 이치인 ‘리(理)’를 품고 있는 인간의 마음을 올바로 다스리는 방도를 찾는 데 있었다. 성리학에 있어서 마음은 서구적 의미의 정보처리 기관, 또는 심리적 장치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인간 개개인과 우주의 본질을 연결시켜주는 고차원의 자아(또는 ‘자기’; self)에 다름 아니었다. 마음이 곧 개인을 하나의 유기적인 전체로서 통합하고, 행동하게 하며, 의미를 추구하도록 해주는 운용자(operator)라고 본 성리학에 따르면, 마음은 인간의 주체이자, 삶의 주재자(主宰者)였다. 즉, 성리학적 세계에서 마음은 일종의 자유의지를 지닌 자율적인 OS(operating system; 컴퓨터 운영체제)와도 같다 하겠다. 이러한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사람은 성자가 될 수도 있고, 악인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성리학의 요체는 마음공부라고 할 수 있다.1)

성리학에 따르면 우주는 ‘리(理)’와 기(氣)의 작용으로 구성되는데, 기가 모여서 이루게 되는 물질세계에 우주의 근본 원리인 ‘리’가 반영돼있다고 본다. 헌데 ‘리’의 본성은 ‘인(仁}’하다. 바꿔 말해서, 기의 집합체인 인간에게 우주의 본질인 자비로운 ‘리’가 반영돼있다는 말이다. 퇴계는 인간의 마음에 반영돼있는 이 ‘리’를 ‘선한 본연지성(本然之性)’이라 일렀고, 우리가 세상 속에서 기질지성에 휘둘려 쉽지는 않으나 이 본연지성을 드러내는 삶을 사는 것이 인간 성숙의 길이라 가르쳤다. 이는 본연지성이 선한데 비해 기는 선한 것이라고도, 악한 것이라고도 할 수 없는 중립적인 성질을 지녔기 때문이다. 인간에 내재돼있는 우주의 본질인 선한 ‘리’가 구현된 마음으로써 살아가는 것, 달리 표현하여 인(仁), 즉 사랑을 구현하는 삶을 만드는 것이 바로 성리학의 목표였다.

‘리’는 ‘사단(四端)’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칠정(七情)’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인간 본성인 사덕(四德)은 인(仁), 의(義), 예(禮), 지(知)인데, 이는 각각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이란 사단(네 가지 단서)의 마음의 형태로 표출되고(2018.10.15 오류 정정), 칠정은 희(喜), 노(努), 애(哀), 구(懼), 애(愛), 오(惡), 욕(欲) 등의 감정의 형태로 드러난다. ‘리’가 인간의 마음을 통해서 드러나는 양태가 이처럼 다양하나, 그 본래의 성격은 선한 것이라고 본 것이다.

선한 본연지성을 드러내는 삶을 살기 위한 주된 방법으로 성리학은 경(敬)을 강력히 추천했다. 경은 집중한다 함인데, 주일무적(主一無適), 상성성(常惺惺), 심수렴불용일물(心收斂不容一物) 등의 개념으로 설명됐다. 주일무적이란 하나에만 집중하여 마음이 딴 데로 달아나지 않게 하는 것을 말하며, 상성성은 마음이 혼미하지 않고 하나에 또렷이 집중함을 일컫는다. 그리고 심수렴불용일물은 마음을 모아 다른 것이 침범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뜻한다. 경, 즉 집중의 대상은 자신 안에 내재돼있는 ‘리’이자 본연지성이다. 그리고 ‘경’하는 시공간은 우리의 일상이다. 심산수곡의 암자가 아니라 우리의 번잡한 일상이 바로 ‘경’의 무대이다. 따라서 소란스런 일상 속에서 매사를 처리함에 있어 자신의 내면의 참된 본성인 선한 ‘리’에 ‘경’하는 선비라면, 정제엄숙(整齊嚴肅)의 자세로 자신의 외면까지도 말끔히 정돈하는 방도를 취하게 되며, 이것이 사대부의 예(禮) 중시 정신의 본질이라 하겠다.

경을 강조하는 성리학적 공부의 자세는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원리에 의해 대표된다. 이는, 모든 사물 하나하나를 관찰자와 분리된 하나의 객관적인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있는 그대로 관찰자와 상호작용하는 생명체로서 존귀하게 대하고 공부하는 자세를 말한다. 이런 공부에서 내 눈앞에 펼쳐진 세상, 자연은 나와 분리돼 나에 의하여 분석되거나 조작될 수 있는 어떤 절대적 실체가 아니라 ‘나’의 최상의 기와 상호작용하고 있는 정형화 불가능한 그 무엇이다. 따라서 성리학적 우주관과 학문에서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완상하고, 그와 상호 교류함에 의해 나를 더 고양시키고자 할 뿐, 자연을 통제하고 조작하여 소유하고자 하지 않는다. 이같이 사물 하나하나를 ‘경’의 자세로 탐구하는 과정을 통하여 세상과 우주만물의 근본적인 진리에 보다 더 근접해갈 수 있다고 봤다.


1) 마음공부로서의 성리학에 대한 해설은 다음의 글들을 주로 참고함: 성백효 역주, 『心經附註』 (전통문화연구회, 2002); 야마다 케이지, 『주자의 자연학』 (통나무, 1991); 장선희, 「이이의 주기적 인간론과 인성교육론」, 정세화 외, 『한국교육의 사상적 이해』 (학지사, 1997), 81-106; 정광희, 「퇴계 ‘경’사상과 그 현대교육적 의미」, 같은 책, 107-131; 황금중, 「성리학의 마음교육 이해와 현대 공교육에의 시사」, 『한국교육』 2005. Vol. 32, No.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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