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서양 근대교육의 원조

     
서양 문명의 양대 사조를 헬레니즘과 히브리즘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기는 하지만 유럽의 사상적 전개와 문화 발달에 있어서 양자가 확연히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기원전 지중해 문명에 관한 사가들 중에는 헬레니즘적인 신인(神人) 신화가 히브리즘적인 기독교 교리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 이들이 있고1), 히브리즘이 유럽을 장악한 중세에도 교회의 교부철학의 중핵에 헬레니즘 문명의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이 자리 잡고 있음은 명백하며, 그밖에도 네오플라토니즘에 영향 받은 기독교 신비주의 사상이라든가, 르네상스시기에 헬레니즘의 복귀의 정점을 점유하고 있는 단테가 그린 기독교적 내세관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양대 사조 간의 상호작용은 복잡하고도 풍부하다. 따라서 헬레니즘과 히브리즘 간의 변증법적 대결 구도만으로 서구 문명을 이해하는 데에는 엄연한 제약이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와 같은 이분법적 시각이 서양의 교육의 역사에 대해서도 큰 줄기의 흐름을 포착하는 데 도움을 주는 바 크다 하겠다. 먼저 그레코로만(헬레니즘) 전통의 고대를 볼 때, 많은 사가들이 아테네 등 그리스 도시국가의 비정형적(non-formal; 제도화 되지 않은) 시민 교육의 정신 및 이를 이어받은 로마제국의 제한된 교육적 활동이 서양 교육 전통의 원형이라 평가하지만, 교육적 전통을 철학 사상과 같은 협소한 범주를 넘어서 학교 체제의 운영이나 교수·학습의 형태 등과 같이 총체적인 영역까지 포괄해서 볼 때에는, 서유럽에서 고대(헬레니즘)의 교육적 전통이 근대에까지 이어져 내려온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 근대 교육의 원형질은 고대가 종지부를 찍은 뒤의 중세 문명 속에서 보다 뚜렷하게 드러난다. 중세 유럽의 교육은 기본적으로 교회의 교육이었고, 9세기 프랑크 왕국의 카롤링거 왕조 때 태동한 성당 부속학교야 말로 현 서양 교육체제의 “최초의 세포”라 부를 만 하다.2) 이들 학교의 성직자 양성 교육은 이후에 문법, 수사학, 논리학 등의 3학(
Trivium)과 산술, 기하학, 천문학, 음악의 4과(Quadrivium), 그리고 신학 등을 포괄하는 종합적 커리큘럼을 갖추게 된다. 또한 중세 12세기 이후에 유럽 최초의 대학이 볼로냐, 파리, 옥스퍼드 등지에 설립됨으로써 서구의 근대 고등교육의 원형이 마련되었다. 중세가 저문 후에는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과 계몽주의자들의 인본주의적(humanist) 학문과 이성존중 정신이 서구의 학교에 스며들기 시작하며 근대적 교육과정으로의 발전을 예시했다. 그러나 루터와 캘빈을 비롯한 개신교 집단이 자국민의 성경 독해력을 키우고자 의도한 새로운 교육정신, 그리고 그보다 더 중대한 요소로써, 개신교에 맞서 구교 수호의 기치를 내건 로욜라의 예수회(Jesuit)에 의해 축조된 교육체제 등이 서구의 근대교육의 기틀을 굳건히 형성하는 데 주된 영향을 미쳤음을 볼 수 있다.
      중세 유럽의 보편 교회인 로마 가톨릭의 교육적 전통에서 뻗어 나온 서양 교육의 기본적 주물은 르네상스 시기 이후에 등장한 걸출한 교육 사상가들의 손에 의해서 헬레니즘적인 자양분을 듬뿍 제공받으며 새로운 성향을 띠기 시작했다. 즉, 중세적인 교회교육의 테두리를 벗어나서 신이 아니라 인간이 중심이 된 세속 사회에서 요청되는 새로운 지식을 다룰 체제 내적 변화가 서양 교육에 요청됐던 것이다. 이런 내적 변화의 기운을 감지한 교육의 선지자로 요한 아모스 코메니우스를 꼽지 않을 수 없다. 모라비아 출신의 성직자인 코메니우스는 서양 근대 교육의 아버지로 불릴 만큼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적 교육의 기본적인 원칙과 틀을 정립한 인물로, 그의 교육적 이상은 지(
eruditio), 덕(virtus), 성(聖; pietas)을 겸비한 인간의 양성에 있었다.3) 그는 르네상스적 인본주의의 가치를 수용하여 지와 덕을 중시함과 동시에, 신과 맞닿은 인간 내면의 성스러움을 강조함으로써 히브리즘적 전통 또한 계승했다. 그는 인간 개개인이 신적인 고귀함을 실현시킬 수 있는 잠재성을 내부에 간직하고 있음을 믿었으며, 이 잠재성을 드러내는 과정이 교육이자, 곧 인간의 삶의 의미라고 봤다. 이러한 이상의 실현을 돕기 위한 새로운 시대의 교육은 다음과 같은 원리, 또는 원칙들을 따라야 할 것을 천명하였다:

1. 교육은 유년기에 시작해야 하고, 학습은 아동의 연령 및 능력의 단계에 적합해야 한다.

2. 아동을 학년별로 분류해야 한다.

3. 매일 실시되는 단계별 학습에 아동은 규칙적으로 출석해야 한다.

4. 개인교수보다 다수 학생 대상의 교수활동이 바람직하다.

5. 아동에게 필요한 것을 교육해야 한다.

6. 일반적 법칙을 가르치기에 앞서서 실제의 예를 가르친다.

7. 아동이 교재를 충분히 이해한 다음에 기억하게 한다.

8. 아동은 행함으로써 배운다.

9. 강제와 벌 등에 의존하는 대신에 친절과 유쾌함으로 흥미를 유발시키고 설득한다.

10. 학습의 실패에 체벌을 적용하지 않는다.

11. 교수활동은 학습자의 이해력에 적합해야 한다.


과거에는, 코메니우스가 이 같은 근대교육의 제반 개념을 확고히 정립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걸 맞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한 경향이 있었는데, 20세기 후반부터는 그 교육 사상의 깊이와 폭이 서구의 학계에서 재조명됐고, 결국 유네스코가 코메니우스 교육상을 제정했는가 하면, 체코와 헝가리가 서로 코메니우스를 자신의 지역 출신이라고 주장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어쨌거나, 코메니우스라는 한 인물의 교육적 이상 추구 속에서 우리는 서양의 중세적(= 히브리즘적) 측면과 르네상스적(= 헬레니즘적) 측면이 융합돼있음을 목격할 수 있다. 하지만 절대신과 같은 외재적 타자가 없이 내면의 타자(신성한 잠재성)로부터 비롯된 도덕률을 주창했고, 또 신인일체설(神人一體說) 쪽으로 선회했음을 볼 때, 코메니우스는 중세적 신관으로부터 이탈했다고 봐야 한다. 그가 경험주의 철학자 베이컨의 영향을 받아서 객관주의적 자연주의 시각을 채용함으로써 과학의 정신을 지지했다는 점과, 이를 바탕으로 ‘모든 존재에 생기를 주는’ ‘모든 이를 위한 교육’을 제시하여 인류와 사회를 구제하고자 했다는 점 등에서 그의 사상의 근대성을 뚜렷이 식별할 수 있다.

심리학자 장 피아제의 해석에 따르면 코메니우스는 자연의 중심에 덕이 있으며, 인간의 내면에도 덕이 잠재해 있는 것으로 봤다고 한다. 자연의 덕이 인간의 덕을 이끄는 일이 자동적으로 일어나는데, 이에 대해서 인간이 취해야 할 행동은 자연의 이끌어 줌에게 저항하지 말고 자신을 내맡기는 것이다. 즉, 자연 의지에 인간의 자유의지를 내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능동적 자유의지 행사의 최고의 경지는 자유의지를 버리는 데 있는 셈이다. 이처럼 자연의 덕이 인간의 덕을 이끄는 것을 코메니우스는 자연의 인간형성 과정이라 보았고, 이것이 곧 교육이자 삶이라 말했다. 결국 코메니우스에게 인간 사회는 교육 사회인 것이다.


1)
에게해 지역의 디오니소스 숭배 전통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신이 인간의 몸을 빌어 지상에 현현한다든가, 그 신인이 죽음을 당한 후 부활한다든가 하는 등의 서사구조는 기독교의 신약 세계에서 예수의 신화를 통하여 정확히 되풀이되고 있다.

2) 필립 아리에스, 『아동의 탄생』 (새물결, 2003), p.244.

3) 장 피아제, 『교육론』 (동문선, 2005), 제7장, “요한 아모스 코메니우스 교육학의 현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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