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 차밭 오르는 길: 자의식(自意識)
  

텔레비전 광고 등으로 유명해진 보성의 차밭에 오르는 길 양쪽에 늘어선 거대한 삼나무들. 닐 도날드 월쉬가 받아 적은 신의 메시지 중에 인류의 미래에 큰 도움을 줄 지구의 자원으로 삼나무를 꼽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껍질을 만져보니, 그저 견고하게 느껴질 뿐인 다른 수목과는 달리 마치 무수한 섬유질로 뭉쳐진 듯한 독특한 촉감을 느끼게 해줍니다. 삼나무의 그늘이 없었더라면 마치 까뮈의 이방인에서 살인이 벌어지는 그 날과도 같이 햇살이 강렬한 한낮. 저는 보성의 차밭을 걸어 오르며,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그곳을 찾은 수많은 인파를 헤치면서 문득 표면적 자아를 의식했습니다. 인적 없는 해남과 강진에서는 거의 잊고 있었는데, 주변에 갑자기 다른 사람들이 많아지니 자아를 의식하게 된 것입니다. 화장실에 가서 거울도 한 번 보고; 간밤에 잔 민박집엔 그러고 보니 거울을 볼 수가 없었지, 그래서 아침에 면도도 안했고. 자아의 껍질 쪽을 잊고 살기 위해선 역시 사람 없는 산속이 최고일 듯 싶습니다. 그러나 내 껍데기를 잊고 산다는 것이 그것을 진정으로 초월한 것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속세에서 수행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기에 자아의 껍질을 초월한다는 문제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살다보면 초월은커녕 그것의 노예인 내 모습만 수시로 발견하게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