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의 구계등 해안: 평화
 

바위가 부서져 작은 돌들이 되어 수십만년 걸쳐 둥글둥글한 돌밭이 된 구계등 해안. 언젠가 본 젊은 신부님은 이십대에 '자신'과 신을 찾아 방황하며 폭풍우 몰아치는 바닷가를 홀로 걷던 기억을 회상한 적이 있습니다. 그 신부님은 그런 방황 끝에 교회에서 안정을 찾았다 하였습니다. 젊은 시절의 방황의 조각들이 이 해변의 돌조각들 같습니다. 나이를 먹으며 그 조각들이 이렇게 둥글둥글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방황을 그만둔지 이제 몇 해가 흘렀습니다. 평화는 저의 내면 가장 깊숙한 곳의 도도한 흐름이 되었습니다. 그 흐름 위로 때때로 하챦은 물결의 일렁임이 발생하고는 합니다. 내 몸 담고 있는 세상은 '나'의 표면에 그런 물결을 일으키고, 그 표면 바로 밑의 나의 마음은 그런 물결에 일일이 조금씩이나마 반응합니다. 그러나 그런 작은 일렁임들은 금새 사그라집니다. 또 나의 마음의 반응도 곧 사라져버립니다. '나'는 그것을 이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평화는 여전히 저 밑에서 그대로 흐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