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의 용담호변: 구도자 찾기
 

전라북도로 올라와 한 '기사식당'에서 향긋한 나물무침 한상 그득 푸짐하게 내어주는 늦은 점심을 먹고 전남 못지 않게 인적 없는 산길을 오후 내내 달려 진안의 마이산에 도착하였으나, 마이산 앞의 민박촌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여 다시 길을 떠나 용담호변을 달리다가 호수 바로 옆에 지은지 얼마 안되는 민박집이 보여 그곳에서 여장을 풀었습니다. 하루 종일 차를 몰아서 좀 피곤하기도 했지만, 은근히 이 여행을 통해 이루고자 마음에 품고 있던 일 한 가지를 이루지 못한 것이 아쉬웠습니다. 그것은, 바로 옆의 무주군 산골 마을에서 농사 짓고 산다는 대학교 동창을 찾아보고자 하는 일이었습니다. 이십 년전 서울에서 대학 다닐 때 꽤 가깝게 지내기도 했던 한상봉이라는 이름의 친구가 대학시절에도 그렇게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더니만, 졸업후에는 신학 공부도 하고 정의구현사제단 일도 하다가 산속으로 들어가 흙과 더불어 살며 글 쓰고 책도 냈다는 소식을 들었더랬습니다. 지난 세월간 꾸준히 쌓았을 그의 신앙의 내공을 전수 받아보고 싶은 마음도 들고 하여 이날 저녁 무렵, 무주군의 이 친구 산다는 마을을 찾아보았지만, 상세한 정보와 시간 부족으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못내 아쉬웠던 것입니다.

저와 성씨가 같아, 과에서 바로 앞뒤 번호였던 이유로 가깝게 지낼 수 있었던 그 친구는 착하고, 생각 깊고, 굳은 심지를 가진 존경할 만한 인물이었습니다. 가난한 대학생이었던 그는 언제나 진지하고 무게있는 젊은이었고, 그에 비하면 부잣집 자식이었던 저는 여자 만나고 노는데 정신 팔린 경박한, 그러나 그렇게 보여지기는 원치 않던, 한심한 논다리였습니다. 인터넷을 뒤지다 우연찮게 발견한 삼십대 끝 무렵의 그의 얼굴은 구도자의 그것을 닮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만나서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옛날 논다리였던 나도 이제는 수행한다고 목숨 걸고 있다고 말이지요. 그가 아주 기뻐할 것 같아서요.

비록 이 날은 그를 만나지 못했지만, 왠지 가까운 장래에 상봉이를 상봉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