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레사

님의 침묵 (2007/9/27)

'성녀' 테레사 수녀가 신의 침묵으로 인해 오랜 세월 동안 비관 속에 살았다는 고백에 대해 말들이 많았다. 그녀의 비밀스러운 고백을 드러낸 책의 내용에 대한 '타임'지의 심층 기사를 얼마 전에 읽고 난 나의 반응은, "그게 뭐 어때서?"였다.

테레사 수녀는 지독하게도 예수님을 갈망했던 독특한 여성이다. 나도 그 갈망의 달콤함과 고통스러움을 전혀 모르지 않는다. 신과 사랑에 빠지는 단 한 순간의 체험으로 인해 심지어는 자신의 영혼을 바칠 각오마저 든다는 것을 이해한다. 그러나 나에 비해 테레사 수녀는 훨씬 더 깊이 신과 사랑에 빠진 중증의 신자였고, 그렇기 때문에 고통 또한 훨씬 더 심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워낙에 강했던 그녀의 에고는 접신의 체험으로 훨씬 더 강해졌던 것 같다. ('접신'은 에고를 버림으로써만 가능한데, 바로 그 접신이 에고를 강화한다는 것은 참으로 희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녀는 신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어 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신의 침묵이 그토록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녀의 성스러운 욕심이 너무 컸다. 신께서 한 번 만나줬으면 됐지 - 보통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한 번도 못 만나는데 -, 아예 신의 애인이 돼버리고자 욕심을 부리고 평생토록 그 달콤한 만남을 다시 경험하기를 갈망한 탓에, 다시금 그 은혜를 베풀어주지 않는 신이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신자의 이런 심리는 비신자가 이해하기 어렵다.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읽으면 테레사 수녀의 고통을 상상해볼 수가 있다. 나는 한용운도 초월 체험의 달콤함을 시어로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너무나도 황홀하도록 달콤한 님,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비할 수 없이 달콤한 님. 그러한 님께서 침묵하고 계신다는 사실은 실은, 믿음 따위로는 끄덕도 않을 듯 단단해보이는 우리 삶의 현실 그 자체다. 삶과 현실에서 신의 음성을 들을 수 없는 것은 테레사 수녀에게 큰 불행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삶을 넘어서서 영적인 차원에서조차 신의 음성을 들을 수 없었던 것이었으리라 - 그녀는 생명 너머의 끝없는 '空'을 봤다고 했다. 신이 있고 없고의 수준을 초월한 경지에서 신의 사랑을 선택한 그녀의 인고의 세월이 애처롭고, 또 존경스럽다. 나도 조금은 그 경지에 가까이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두렵긴 하지만.

예배당 좀 들락거리고, 그래서 '현실'에서는 맛볼 수 없는 아편 같은 무아경을 몇 번 맛봤다 해서 마치 자신이 신과 우주를 다 깨친 듯, '현실'을 극복한 듯, 세상 사람들에게 '나를 따르라'며 설교 하고 다니는 이 땅의 오만스러운 종교환자들과 비교해볼 때, 테레사 수녀의 고통과 인내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테레사의 고통이 환자들의 '충만한' 기쁨보다 훨씬 더 예수님을 닮아있다.

한여름을 달궜던 샘물교회 탈레반 납치 사건도 신정아 광풍에 스러진 듯 하다. 개신교건 불교건, 나름대로 세상 사람들의 영적인 성숙에 도움을 줄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나의 일말의 희망은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다. 금전적 타락과 권력에 대한 탐욕으로 세상을 분열시키는 데에만 앞장서고 있는 기성 종교들, 갈수록 사회에 도움은커녕 피해만 주고 있는 기성 종교들에 더 이상 희망을 걸어야 할지, 점점 더 회의심만 든다. 아무래도 교회 밖, 사찰 밖에서 실천하는 일상 속의 수행을 도와주고, 쓸데없는 성직자 조직이나 낡아빠진 경전 대신에 신 또는 우주적 본성과의 직접적 교류를 일러주는 NCO (Non-Church Organization)라도 하나 만들어야 할런 지도 모르겠다. 이건 테레사 수녀의 절망의 깊이에 대해서 묵상해보려던 내 마음의 고요를 깨뜨려 놓은 성가신 환자들에 대해 짜증이 나서 늘어놓는 푸념이다.

그러나 전 인류가 언젠가는 중세적 암흑의 질곡으로부터 '진짜로' 해방돼서, 도킨스의 우상파괴론 쯤에 대해서는 즐겁게 담소하며, 테레사 수녀 수준의 깊은 영성을 맛볼 정도로 업그레이드 되기를 바라는 건 나의 망상에 불과할 것인가. 그런 세상을 꿈꾸다 간 존 레논처럼 나도 몽상가에 불과할 것인가.

그러하더라도, 나는 그 꿈을 포기해버리기 보다는,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쪽을 선택한다. 그 쪽이 참된 나니까.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 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 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은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우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배기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의 만날 때는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 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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