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주의
교육의 극복 (2011/11/26)
©
Suk Hoon Han
1.
근대교육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요한 아모스 코메니우스는 인간이 성장함에 따라
내면에 잠재된 위대한 덕성이 우주적 부르심을 받게 된다고 봤다. 이런
부르심에 인간은 자연스럽게 이끌리게 되는데, 교육은 이러한 '부르심에
대한 이끌림'을 도와줘야 하고, 또는 최소한 그것을 방해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이끌리게 될 때 인간은 온전하게 성장하여 지성과
덕성과 신성을 고루 갖추게 된다.
딸 둘을 키우는 부모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 땅의 교육자로서 고대 의대생 삼인의 성추행 사건에 대해 자꾸 생각해보게 된다. 내가 공부한 동서양의 주된 교육사상적 전통들에 따르면 인간은 누구나 내면에 생물학적인 자신을 뛰어넘는 위대한 덕성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가르침에 '대체로' 동의하기까지 회의주의자인 나는 수십 년이 걸렸다. 그렇다면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른 고대생 삼인도 내면에 그러한 덕성을 지니고 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헌데 그런 덕성이 있다면 그 단서가 이를테면 측은지심 같은 형태로 드러나야 하는데, 1차 성추행 현장을 피해 달아난 여자를 반복적으로 범했다는 그들의 범죄 사실 속에는 측은지심 따위는 엿보이지 않는다. 그들 내면에는 인간에게 있어야 할 보편적인 덕성이 아예 없는 것일까? 마치 타인의 감정에 대한 공감 능력이 결여된 싸이코패스처럼?
만약에
그들이 싸이코패스가 아니라면, 그들의 양육과 교육이 자연과 반하는,
부자연스러운, 즉 기이한 것이어서 그들 내면에 있을 덕성의 자연스러운
발현을 저지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자연에
따라 자랐다면, 아니 거창하게 그럴 것까지도 없이, 그저 한국 이외의
곳에서 평범하게 '적당한'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면 적정 연령에 이렀을
때 그들 내면의 덕성에게 우주적 부르심의 손길이 다가왔을 것이고,
그 부르심에 스스로 이끌려 자신의 덕성을 끄집어내고 키워볼 기회를
가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국의 교육체제 속에서 최고의 품질,
즉 최고 점수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자연스러운 부르심 같은 것에 귀를
기울일 여유가 없고, 오히려 자연스러운 심신의 발흥을 억압하면서까지
1등을 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것이 요청된다. 이 경쟁의
최종 승자가 된 고대 의대생들은, 승자가 된 댓가로 자신의 내면의 덕성의
자연스러운 드러남을 성장과정에서 보류할 수밖에 없었던 건 아닐까?
그렇다면 그들이 그런 악행을 저지른 원인 소재는 그들 자신에게 보다는
이 사회와 교육체제와 그들의 부모에게 있다고도 할 수 있지 않겠나.
2.
안철수
교수가 사회의 불우한 이들을 위해 천오백억 원 상당의 사재를 기부하겠다
했다. 놀라운 소식이다. 세상엔 저런 사람도 있을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아직 우리 종족이 소멸하지 않아도 되리라는 희망을 가져도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것이 정치적 의도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떤가?
중요한 건 힘겨운 이들에게 무시 못할 도움이 건네지게 된다는 데 있지
않은가?
그런데 세상의 어떤 이들은 그를 의심하고 비난하는 따위의 쓸데없는 유위(有爲)에 귀한 정력을 낭비한다. 이들에 대한 명진 스님의 꾸지람을 방명록에 실었지만, 여기에도 남겨두겠다: "우리는 헛소리하고, 막말하고, 사기 치고, 거짓말하고, 스폰서 끼고 살고, 성희롱하고, 투기하고, 위장전입하고 살아온 것들이, 따뜻하고 배려하며 살아온 사람의 나눔을 공격하는 패역을 보고 있다! 분노할 줄 알아야 산다!"
이외수
소설가의 발끈함에도 깊이 공감한다: "남을 위해 콩 반쪽 나누어
먹는 일도 꺼리던 사람들이 기부나 봉사에 앞장 서시는 분들을 씹는
모습은 정말 비열하고 추해 보입니다."
[나는 평소 학생들에게 우리 사회는 좌, 우의 양 날개가 다 필요하며, 우리 나라에는 '보수'적으로 지켜야 할 것들과 '진보'적으로 고쳐야 할 것들이 다 있으니, 일단 양쪽 이야기를 다 들어야 한다고 떠드는, 정치 이념의 스펙트럼에서 보자면 회색분자 비슷한 인간이건만, 우측의 언사들은 갈수록 억지와 탐욕을 벗어나지 못함을 목도하게 된다―뭐, 좌측의 언사가 기품 없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명진과 이외수는 평소에 내가 존경하는 이들이다. 이분들도 스스로를 좌, 우 어느 쪽에 속하는 것으로 규정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식경제부 장관이라는 이는 안철수 교수에게 과학자로서 연구나 하라면서, 그 천오백억 필요 없으니 도로 가지라고도 했다. 마치 다 죽게 된 불쌍한 사람을 살리려고 귀한 돈을 쓰려는 선한 사마리아인에게 그 돈은 필요 없으니 도로 가져가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 아닌가. 어려운 이의 손에 쥐어줄 귀한 돈을 자신이 무슨 자격으로 치우라 말라 하는가? 일국의 장관이란 이가 어려운 국민들의 처지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이런 이에게 불우한 이웃들에 대한 측은지심 같은 게 있을까? 그에게는 자신의 내면의 고귀한 덕성의 단서인 측은지심이란 게 없는 것처럼만 보인다. 우리의 경쟁주의 교육의 최고의 산물이 바로 이런 이들이 아닐까?
명진 스님의 '패악'이라는 비판에 공감하지만, '그들'을 비난하고 있는 나의 과거를 떠올린다. 신께 귀의하면서 내가 다짐했던 것은 '그들'을 비판하고 나의 방식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내가 그들을 뛰어넘고 압도하는 도덕적 우위를 지켜야만 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일견 기특한 마음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그런 마음 안에는 그들과 나를 분리하여 보는 마음과 우월한 도덕성에 대한 에고의 욕심이 숨어있었다. 도덕성이 경쟁의 범주에 속할 수 있나? '도덕성'이란 과목에서 일등을 하겠다는 마음은 도덕적이라 할 수 있나? 어려운 질문이긴 하지만, 내 마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타인을 나 자신보다 앞에 놓는 진정한 도덕성보다는 '나'에 대한 욕심이 컸다는 점을. 나를 비우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명진이나 이외수 같은 이들의 등 뒤에나 숨어서 함께 손가락질 하고 있다. 자신이 없는 거다. 자신도 없는 주제에 경쟁주의 교육의 변화를 꿈꾼다. 자랑스럽지 못하다.
내가 먼저 변해야 한다는 판단은 언제나 옳다. 헌데 얼마나 변해야 악을 악이라 꾸짖을 수 있나? 얼마나 참된 자기를 올바로 세워야 유치한 자신의 내적 콤플렉스의 투사가 아닌, 진정한 의미의 '거룩한 분노'를 일으킬 수 있나? 아직 이 질문에 답할 자신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미 분노하고 비판한다. 어쩌면 나의 분노를 사회적 작용이라고 볼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명진, 이외수 말고도, 평소에 내가 존경하고 따르는 스승과 같은 분들마저도 이즈음의 기득권 층의 행태에 대해서는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시고, 비판들도 하신다. 그분들의 분노에 힘입어 나의 분노에 대해서도 신뢰를 갖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하긴, 내가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게 세상을 꾸짖을 수 있을 경지에 도달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면 나는 평생 입닥치고 살다가 가야 할지도 모르니, 너무 순수한 척 할 필요도 없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