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成人)
교육
(2018/12/30)
©
Suk Hoon Han
주로
대학의 학생들 가르치는 일을 맡아, 그 일만으로도 헉헉대며 겨우
세상의 역할 하나를 수행하고 사는 나에게, 과분하게도 중장년층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의 임무가 주어진지도 이미 여러 해가 지났다.
내가 남들보다 책 몇 권 더 읽고 학위가 있다 하여 성인의 삶에 대해서
뭘 더 잘 안다고 내세울 게 있겠나. 그럼에도, 앞서 간 선학들의
통찰과 지혜를 길잡이 삼아 성인인 나 자신을 가르치고 싶다는 변을
웅얼거리며 성인 교육의 일을 계속 하고 있다. 융이
특히 강조했듯이,
어쩌면 우리 사회의 수많은 성인들의 불행은 성인의 삶에 대한 교육의
철저한 부재에 기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내 삶의 오점들 또한 그런 교육의
부재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얼마 전에 종강한 성인
대상 수업에서 토의 논제로 사용한 글을 여기에 나열해본다.
1.
자기실현은 개인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으나, 그 정도가 0인 경우는
나쁘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실현 욕구가 '사치'라고 비판하지만,
인간 한 명, 한 명이 다 소중한 영혼임을 아는 이라면 그들 한 명, 한
명의 자기실현 욕구를 부정할 수 없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평생에 걸친 자기실현의 노정에서 고득점을 거두는 이들은 극히 드물겠으나,
자기실현의 반대로 향하는 삶은 필히 파멸에 이르고, 자기실현의 방향으로
조금이라도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바로 그만큼이라도 삶의 의미를
살려내게 된다. 참다운 자신을 살려내는 바로 그만큼이라도 삶의 의미를
살려내게 된다.
2.
자기실현 욕구가 무시되면 인정 욕구에 과도하게 집착하게 되어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친다. 더 나쁜 것은, 인정 욕구보다 낮은 차원인
동물성에 안주하여 진정한 인간성을 실현하지 못하게 되면, 깊이 숨어있는
불만이 타인 또는 자신에게 퍼부어질 수 있다.
인정 욕구
과잉의 폐해에 대해서는 조직생활을 경험한 제자가 통찰을 건네줬다.
'동물성' 수준에 대한 경고는 미국의 사상가 Ernest Becker의 말이다.
결국, 참다운 자신을 살려내는 과정에 빠져있는 이는 큰 불만이 없다는
말이다. 불만보다는 감사의 마음이 크기에 주변에 선을 베풀게 된다.
3.
내가 즐겨야 모두가 행복하다.
삶의 여러 의무로 심신이
지친 상태에서 저녁 강의하러 학교에 가며 든 생각이다. 강의에 임하기
전까지 어떻게든 내가 즐거운 마음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삶은
때로 몸과 마음을 고단하게 하지만, 거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면 내
임무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게 된다. 내가 즐거워야 한다. 내가 즐길
줄 알아야 한다.
4.
매즐로우의 하위-생리 욕구의 충족 없이 상위 욕구로 상승하기가 불가하듯,
인간 내면의 동물성, 짐승, 야수성을 부정하고 聖으로 올라가기가 불가하므로,
내적 통합이 길이다.
자기실현, 또는 聖 pietas 에
다가가는 과정은 낮은 수준의 자아의 제거가 아니라 그것을 통합하는
심화/확장이다.
5.
“우리가 자신의 문제를 정말로 자각한다면 삶에 작은 부스러기 같은
변화라도 생깁니다. 그게 모여 덩어리가 되고 가치관의 변화로 이어지죠.”
- 오은영
심층심리학에 기초한 지혜로 세상의 상처받은 이들을
어루만져주는 우리 사회의 유명한 현자의 말씀이다. "작은 부스러기
같은 변화"라는 말씀이 좋다. 그것을 귀히 여겨야 한다.
6.
사랑이 지배하는 세상. 사랑을 잘 해서 행복하고, 사랑을 잘 못해서
불행하다.
돈이 없어서 불행하다고들 하나, 그 또한 돈이
없어서 사랑하는 이에게 충분히 베풀지 못함을 불행해 하는 것 아니겠는가.
성인기에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삶의 가장 큰 과업이라고
적시한 에릭 에릭슨 선생의 관찰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7.
교육의 목적은 자기실현에 있다.
교과서에 실린 교과서적인
말이다. 그 말씀을 처음 접한 이래로 사십 년 넘게 마음에 간직하고
살았다. 많은 비판을 받는 공교육 속에도 보물은 숨어 있건만...
8.
“정신치료의 고귀한 목표는 환자를 거의 불가능한 행복의 상태에 두는
것이 아니라 그가 고통을 참는 철학적 인내와 견고성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삶의 충족과 전체성(= 개성화 = 자기실현)은 고통과 기쁨의
평형을 요구한다.” - 칼 구스타프 융
여전히 두렵도록 냉혹한
말씀이지만, 내가 아픔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서고, 아픔을 견딜
수 있기를 기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