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에 대한 회의 (2003/11/23)
 



                      
 

[융의 아버지]는 고독했다 .... 한 번은 그가 기도하는 것을 들은 일이 있었다. 그는 결사적으로 믿음을 얻으려고 몸부림치고 있었다. 나는 충격을 받았고 또한 화가 났다. 왜냐하면 나는 그가 얼마나 절망적으로 교회와 신학적 사고에 빠져 있는가를 보았기 때문이다. 교회와 그의 신학적 사고는 그로부터 신에 직접 도달할 수 있는 온갖 가능성을 차단한 뒤에 그를 의리없이 버렸던 것이다. 이제야 나는 나의 체험을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신 자신이 나의 꿈 속에서 신학과 그 토대 위에 세운 교회를 대단치 않은 것으로 부인해 버렸다. 다른 한편 신은 신학이나 그밖의 많은 것을 허용하였다. 인류가 그러한 발전을 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가정하는 것은 가소로운 일처럼 보였다. 인류란 대체 무엇이었던가? 그들은 마치 강아지처럼 우매하고 맹목적인 상태로 태어났다. 신의 모든 피조물처럼 그들이 더듬거리며 가고 있는 어둠을 밝히기에는 빈약한 빛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하여 내가 아는 어느 신학자도 "어둠을 비치는 빛"을 자신의 눈으로 본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고히 믿게 되었다. 그랬다면 그들은 결코 "신학적 종교"를 가르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신학적 종교"를 가지고는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의 신의 체험에 상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는 것에의 기대를 주지 않고 믿도록 요구하고 있었다. 그것을 나의 아버지는 무척 힘들여 시도했고 여기에 좌초되고 말았다. 아버지는 또한 우스꽝스러운 정신과의사의 唯物主義 앞에서 자신을 방어하기가 어려웠다. 유물주의라는 것도 바로 신학과 똑같이 믿어야 하는 것이었다! 어느 때보다도 나는 이 兩者에 모두 인식비판이나 체험이 결여되어 있다고 확신하였다.

- C.G.Jung의 回想, 꿈 그리고 思想, p. 112


이십 세기 지성계의 거장인 융의 신관(神觀)은 지극히 사적이며, 주관적이고, 탈(脫)이성적입니다. 동시대 신학의 성과에 별 관심이 없는 듯이 보일 정도로. 신 앞에서는 모든 체계와 관행과 규칙들이 얼마나 허무하게 스러져버리는지... 인간을 신과 직접 대면토록 도와주는 요소에서 이성적 기능을 제외시키는 것은 매우 위험하겠지만, 이성의 습관에서 비롯되었을 체계화, 정형화, 또는 정의(定義)하기 따위가 그 직접적 대면을 얼마나 가로막고 있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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