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의 종교관 (2002/11/23)
 



                                                 
 

[융이 소년기 때에 일종의 신비체험을 겪은 후의 감상을 회고한 내용입니다.]

"그래, 이것이었구나. 나는 굉장히 마음이 가벼워지며 말할 수 없는 解脫感을 느꼈다. 기다렸던 저주 대신에 은혜가 내 위에 내렸다. 이로써 내가 일찍이 느끼지 못한 말할 수 없는 축복감에 젖었다. 행복과 감사의 마음이 북받쳐 나는 울었다. 나는 내가 그의 가혹한 준엄함에 쓰러진 뒤에 이 지혜와 神의 慈愛에 감싸이게 되었음을 감사했다. 이것은 하나의 깨달음의 체험이었다. 이전에 이해할 수 없었던 많은 것이 내게 분명해졌다. 내 아버지[목사]가 이해하지 못한 것을 나는 경험하였다. 그것은 神의 意志이다. 아버지는 최선의 이유와 가장 깊은 신앙심에서 이 神의 의지에 저항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또한 모든 것을 치유하며 모든 것을 이해시키는 은혜의 기적도 체험할 수가 없었다. 그는 성서의 계율을 행동규범으로 삼았다. 그는 성서에 쓰여 있는 대로, 그의 조상들이 가르쳐 준 대로 神을 믿었다. 그러나 그는 살아 있는 직접적인 神을, 성경과 교회 위에 자유롭게 全能한 힘을 가지고 서 있는 神, 인간에게 거의 自由를 호소하며, 그의 개인적인 의견이나 확신을 神의 요청을 무조건 충족시키기 위해서 포기하도록 강요할 수 있는 神을 알고 있지 않았다. 神은 인간의 용기를 시험하는 데 있어 전통의 영향을 받기를 거부한다. 그것이 아무리 거룩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는 이미 그의 전능한 힘으로 그런 용기의 시험에서 정말 악한 것이 생기지 않도록 잘 보살필 것이다. 사람이 신의 의지를 채우면 그는 바른 길로 간다는 데 확신을 가질 수 있다.

神은 또한 아담과 에바를 만들기를 그들이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게 하였다. 그는 그들이 순종하는지를 알기 위하여 그렇게 하였다. 神은 또한 내가 종교적인 전통에 따라 거부하고 싶은 것을 요구할 수 있다. 順從心은 내게 은혜를 가져다 주는 것이었다. 나는 그 체험 이래로 무엇이 神의 은혜인지를 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神에 위탁되어 있음을 경험했고 중요한 것은 다른 아무것도 아닌 그의 뜻을 충족시키는 것임을 경험하였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 의미도 없는 일에 나를 내맡긴 셈이 된다. 그 당시 나의 진정한 책임이 시작되었다."

- C.G.Jung의 回想, 꿈 그리고 思想, pp. 54-55.


정신의학자였던 융이 말년의 자서전에서는 과학의 언어를 버리고 영적인 체험을 주축으로 일생을 회고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신비 체험은 제가 겪은 신비 체험과 유사합니다. 신을 체험함으로써, 그때까지는 전혀 몰랐던 많은 가르침을 얻게 된다는 것도 유사합니다. 그리고 전통적 종교의 방식이 매우 틀에 박혀 있고 제한되어 있음을 절감한 것도 유사합니다. 저처럼 신비 체험을 하신 길벗들께서도 이 글을 읽고 깊이 공감하시리라 믿으며 이곳에 옮겨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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