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간의 가장 추악한 면이 드러나는 전쟁 만행

사람에게는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모를 일들이 참 많습니다. 전쟁도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잘 알 수가 없겠지요. 헐리우드의 전쟁 영화 중에는 전쟁의 참상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것들이 꽤 많습니다만, 제 소견으로는 그 영화들이 보여준 참상이 대체로 신체적 파괴와 죽음에 관한 것들이고, 또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보다 덜 충격적인 것들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전쟁을 몸으로 겪어보지 못한 제가 전쟁이 육체적 생명 뿐만이 아니라 인간성을 어떻게 무참히 짓밟는지를 몸서리치게 느꼈던 것은, 지난 세기에 일어난 전쟁을 겪었던 이들의 생생한 증언을 수록한 각국의 자료들을 읽어보면서 였습니다. 저를 반전(反戰)주의로 돌아서게 한 그런 기록들이 제공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엽기'를 많은 이들이 경험해보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다음의 글 같은 끔찍한 글이 우리 사회에서 공명을 울리는 일이 없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은 전쟁을 결심할 수 있는 나라인가? 전쟁을 스스로 결단해본 적이 없는 국가는 결투를 해본 적이 없는 남자와 비교될 수 있다. 전쟁이란 것은 지도층과 국민이 개인적 운명과 체제의 존망을 걸고 국가의 힘을 총동원하는 건곤일척의 승부이다. 그 사회의 가치관, 정부와 국민의 총체적 능력과 의지력, 그리고 민족과 국가의 명예를 거는 집단적 고뇌, 각오, 결단, 희생, 욕망이 전쟁인 것이다. 이기면 노예가 주인이 되고, 지면 남편이 아내도 지킬 수 없게 되는 전쟁을 통하여 국가, 민족이 탄생, 소멸, 성장, 성숙을 거듭해왔다는 것은 역사의 가르침이다. 전쟁을 통해 민족적인 대각성을 이룬 나라는 선진국으로 성장했고 그렇지 못한 나라는 쇠락의 길을 걸었다. 한 인간이 어른으로 성숙하는 데 있어서 때로는 주먹다짐이 필요하듯 한 국가로서 존립하고 성장하는 데 있어서 전쟁은 피할 수 없는 명제인 것이다."

윗글은 유명한 극우논객인 조선일보의 조갑제씨가 쓴 것을 사회평론가 진중권씨가 최근 저서 '폭력과 상스러움'의 31페이지에서 인용한 것을 다시 베껴본 것입니다. 역시 명문장은 많은 사람들이 베끼게 되는가 봅니다. 저는 안티조선의 일원이 아닙니다. 그러나 작년 어느 때인가 조선일보의 사설이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판단이 들어 다른 신문으로 바꿔 버렸지요. 워낙 정치 쪽에 관심이 없는 편이라 웬만하면 그냥 보려고 했는데, 또 조선일보에 장점인 부분도 많이 있다고 생각해서 그냥 참고 보려고 했는데, 저같은 정치-이념 불감증자도 그냥 볼 수가 없더군요. 또, 저는 진중권씨 같은 날카로운 비평가의 팬도 아닙니다. 과거에 저도 흔히 '네오막시스트'라고 불리우는 사상가들 저술을 꽤 읽고 빠져들었던 때도 있었으나, 유심(唯心)론자가 되어 버린 지금은 그때와는 또 다른 사상적 방향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중권씨 같은 분의 글이 분명히 이 사회에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적어도 조갑제씨 같은 분이 '민의'의 대변인 역할을 해야만 하는 사회라면 이곳에는 진중권씨가 더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위에 베껴 놓은 글은, 진중권씨 책을 읽다가 하도 기가 막히고 말문이 안 닫혀지길래,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해 이곳에라도 올려놓았습니다. 1960년대나 80년대가 아니라 봉건 제후들이 투쟁하던 중세 유럽이나 고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아니, 원시 야만시대의 지식인 글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만큼, 지극히 단세포적인 사고의 결정체로 보입니다. 서양의 지성인들 마저 매혹시켰던 바 있는 일본의 탐미적 군국주의자 미시마 유키오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노력하는 것으로 보이는 소설가 이인화 교수같은 분의 전체주의에 대한 미학적 동경에서 국가폭력에 대한 잠재적 숭상을 최근에 읽을 수 있었는데, 이런 분들이 제 생각보다 우리 사회에 더 많이 서식하고 계신 것인가 의아합니다.

전쟁이 우리 내면의 악마와 야수를 얼마나 놀라울 정도로 불러내주는지 다음에 제가 올리는 실화들에서 한 번 간접적으로 경험해보기 바랍니다. 저는 전쟁을 일으킨 이들을 비난하자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 우리를 얼마나 순식간에 변신시켜줄 수 있는지 그 가공할 사회학적, 심리학적 위력을 함께 느껴보자는 것입니다. 왜 이런 태평성대에 반전 얘긴가. 제 생각에 아직 우리 나라에는 평화주의(pacifism) 전통이 견고하게 뿌리내리지 못했고, 게다가 극우전쟁옹호론자가 버젓이 사회 중심을 휘젓고 다니고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에게 평화가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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