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근대화, 현대성

현대화나 근대화나 다 유사한 개념이다. 근대화란, 현대 이전의 시대로부터 현대로 변화하게 된 과정을 일컫는다. 그 ‘현대’란 과연 무엇인가? 현대는 우리가 속해 있는 이 시대, 즉, 20세기와 21세기다. 따라서 우리는 현대를 가장 잘 알며, 현대와 가장 친숙한데, 그 친숙도가 지나쳐서 우리는 현대 이외의 시대에 대해서는 잘 이해하지 못한다. 한마디로 우리는 ‘현대’가 당연하다고 믿는 현대인일 뿐이다. 이것이 우리가 비현대적인, 또는 전근대적인 유교적 교육에 대해서 대체로 견지하게 되는 부정적인 인식의 바탕이다.

그러면 현대는 그 이전 시대와 비교해서 어떤 특질을 지닌 시대인가?1) 현대의 특질을 현대성(modernity)이라 지칭할 때, 무엇보다도 인간의 이성을 존중하는 합리적, 과학적 태도가 현대성의 요체라 하겠다. 중세에 종교가 점했던 지위를 현대에는 자연과학이 점유하고 있다. 과학은 현대의 종교다. 그러나 과학의 에너지원은 믿음이 아니라 이성이다. 이성은 혼돈의 우주를 정리, 정돈해서 보고자 하는 인간의 성향을 대표하는데, 따라서 통합적이면서도 정합성을 가진 단일 이론으로써 세상을 설명하려는 기도를 수반한다. 현대에는 그 전 시대에 비해 이런 단일 이론, 또는 ‘거대 담론(master narrative)’이 다수 등장했다. 거대 담론들은 세상을 정리해서 보여주기는 하지만, 그 정리 작업에 포함되지 않은 수많은 무의미해 보이는 요소들은 외면하게 됨에 따라 우리의 이해를 제한시키는 역기능도 지니고 있다. 즉, 합리성은 인간의 시각에 초점을 부여하지만, 그 시각을 제한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마르크시즘은 사회경제적 조건이 인간 역사를 어떻게 움직여 왔는가를 정리된 이론으로 설명해주는 거대 담론인데, 그 유물론적 결정론이 종교, 예술, 심리 등등 인간사의 풍부한 양상을 효과적으로 짚어주기는 어렵다. 또 근대화 이론이 20세기 지구촌의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의 정치경제적 간극에 관해 하나의 커다란 틀에서 설명해주기는 하지만, 이 이론에 내재돼있는 서구 중심적이고 목적론적인(즉, 모두가 서구처럼 발전할 것이라는) 역사관은 편협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이고도 이념적이어서 과학성을 위배한다. 심지어 인간 이성의 가장 순수한 활용 분야로 여겨지는 자연과학도 이 같은 시각의 제한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은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론에 의해 설명된 바 있다. 이처럼 이성적 활동의 한계가 엄연히 상존함에도, 현대인은 이성을 지극히 중시한다. 감정보다는 이성이 훨씬 신뢰할 만한 인식 채널로 여겨진다. 따라서 현대인은 모든 자연적, 사회적 현상의 배경으로서의 원인에 대하여 이성적 추론을 시도한다.

또 현대는 개인의 자아를 발견한 시대라고도 불린다. 전근대의 사람들은 자신을 개인으로 정의하기 보다는 개인의 무리인 어떤 집단의 일원으로 정의하는 경향이 강했다. 한양 남산골 사람 모씨, 박씨 가문의 몇 대손 아무개 등.2) 그러나 현대인은 개인으로서의 자신을 가장 중시한다. 나는 한국인이기에 앞서, 오씨 가문의 몇 대손이기에 앞서, 그저 오형모로서 존재한다. 개인주의 성향은 현대인을 특징지어준다. 동시에 현대인은 개체로서의 행동의 효과성에 대한 믿음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고 한다. 즉, 자신이 어떤 일을 감행하면 그 성과를 궁극적으로 얻을 것이라고 예상한다는 말이다. 학업에 자신을 바쳐 일류 대학을 졸업해서 잘 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는 말이다. 이 같은 믿음은 전근대적 농경 사회의 운명론적 체념과 대조된다. 닫힌 사회의 고정된 계층 및 직업 구조 속에서 평생을 살았던 전근대인들은 자신의 노력으로써 어떤 변화를 창출해낼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는 것이다. 더불어 현대인은 세상의 재화의 무제한적 증가에 대한 믿음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세월이 가도 생산 질서에 큰 변화가 없던 전근대적 농경 사회에서는 공동체의 생산량이라는 전체 파이의 크기가 늘 일정하므로, 특정 개인이 이전보다 큰 수익을 올리는 것은 불특정 다수의 제한된 몫을 가로채는 것으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물질적 자산뿐만 아니라 비물질적인 ‘복’도 이와 같이 제한돼있다고 여겼기 때문에, 한 공동체 내에서 타인들에 비해 더 많은 복을 받은 것으로 간주된 이들은 사람들의 질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현대 사회에서는 새로운 재화가 끝없이 생산된다고 믿기에 평균적인 사람들보다 더 ‘성공’한 이들이 칭송과 우러름의 대상이 된다 - 물론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여전히 유효한 우리나라에서는 성공한 이들에 대한 질시의 분위기 또한 상당하지만.

현대인의 특성은 그 시간관에서 더 잘 드러난다. 현대인은 전근대적 농경인의 순환론적 시간관과 대조적으로, 직선적 시간관을 갖고 있다. 농경생활 속에서 사시사철의 변화가 끝없이 되풀이되는 삶을 당연시하던 전근대인과 달리, 현대인은 시간이 직선적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고, 앞으로 나아갈수록 더 진보되고 발전할 것을 당연시한다. 현대인에게 미래란 지금보다 훨씬 더 발달된 문명으로 여겨진다. 또 현대인은 시간을 잘 지키고, 시간을 중시한다. 늘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바쁘게 길을 가는 전형적인 도시적 현대인의 모습에 비할 때, 전근대인은 시간 개념이 느슨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런 현대성들을 지닌 현대인들이 만든 현대라는 시대는 과연 전근대에 비해 인간에게 더 바람직한 시대인 것일까? 20세기 후반기 이래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상당히 부정적이 돼버렸다. 서구를 필두로 전 세계가 1세기가 넘도록 추구해온 ‘현대성’은 이제는 더 이상 인기 있는 품목이 아니다. 이 같은 현상은 현대라는 시대가 양산한 복잡다단하고도 심각한 문제들에 기인한다. 현대성이라는 덕목, 태도, 또는 의식은, 그것이 잉태한 현대의 숱한 심각한 문제들 - 핵 확산, 생태계 파괴, 끊이지 않는 지역 분쟁, 선진국과 저개발국 간의 극심한 경제적 불균형과 그에 따른 기아, 비인간적 도시화 등등 - 로 인하여 이제는 많은 비판에 직면해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현대보다는 현대를 뛰어넘은 포스트모더니즘을 찾게 됐다. 거대 담론이 세상을 재단하고 지배했던 시대로부터 다양하고 말단적인 세상의 편린들로부터 세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이다.

과연 현대는 이제 쇠퇴하고 있고, 결국 폐기될 구시대적 세계관일 뿐인가?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는 여전히 중세적 미신의 질곡으로부터 인류를 해방시킨 이성존중정신의 귀중함을 역설하고, 네오마르크시스트인 위르겐 하버마스는 시민사회 발전과 사람들 사이의 소통을 위해 현대인의 이성적 역량의 보전을 포기할 수 없음을 천명한다. 한국의 교육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해방 직후 세계 최빈국으로 국민들의 기본적 생존조차 보장할 수 없었던 나라가 지금 세계 경제 12대 대국에 속할 수 있게 만든 견인차로서, 현대성을 그 목표로 삼았던 교육이 크게 공헌했음을 부인할 수도 없다. 또한 근대교육은 만인에게 평등하게 지식을 제공했고, 그러한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가능하게 됐다. 양차 대전을 거치며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에 기초한 인도주의적인 가치관이 전 지구적 차원에서 수용됐다. 그리고 전근대적 가부장제도의 붕괴를 초래한 현대화 과정 속에서 인류의 절반인 여성에게 정치적, 경제적, 법적으로 남성과 동등한 권리가 부여됐다 - 양성평등이 사회문화적으로도 정착된 것은 아닐지라도. 현대가 대단히 심각한 문제들을 유발하여 인류 전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도 사실이지만, 전근대보다 인류의 복지 증진에 기여한 바 또한 적지 않다는 말이다. 세상 모든 것이 그렇듯이, 현대성도 빛과 어둠의 양면을 가지고 있는가 보다.


1)
현대인들이 전근대인들과는 다른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논의는 미국의 근대화 이론(modernization theory)군에 의해 제기됐다. 이 이론은 세계 제2차대전 이후 비서구권에 등장한 수많은 신생독립국가들이 산업화와 근대화를 추구하기 시작하며 각광받았으나, 그 서구중심적 시각과 제국주의적 발상 등으로 인하여 자유주의적 서구 학계의 비판의 대상이 됐고, 베트남전 이후로는 미국의 학계에서 거의 추방되는 지경에 이른다. 특히 이 이론군의 중심에 있던 구조기능주의의 태두, 하버드대의 탤콧 파슨(Talcot Parson)이 미국 CIA의 베트남인 의식개조 프로젝트에 연루된 것에 대한 학계의 반감은 매우 컸다. 결국 영미 학계에서는 1970년대 이후로 근대화 담론이 거의 금기시 됐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화 이론을 추진했던 여러 학자들이 비서구권 사회들을 대상으로 수행했던 대규모 연구들의 성과는 전근대적 사회와 현대 사회와의 차이에 대한 후대의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기여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2) 전근대의 유럽인들도 가문의 성씨 대신에 자신이 살던 지역 명을 성씨로 삼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역 명만을 이름과 다름없이 쓴 경우가 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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