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영혼의 성숙을 다루는 교직

황사와 꽃샘추위가 기웃거리던 3월도 지나가고, 새싹이 돋는 4월이 왔다. 잔인한 이 봄에도 사회의 불안과 탐욕과 투쟁이 응집된 이 땅의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절망과 희망을 번갈아가며 던져주고 있었다. 들을 귀가 있는 교사들은 세상이 모아다가 그들에게 바치는 믿음의 지혜를 감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나)

- 선생님 말씀

너 그렇게 선생님 말 안 듣다가는 커서 조승우(미국 버지니아텍 총기난사 범인) 같이 된다.

넌 반드시 한국의 빌게이츠가 될 거야.


그 머리로 대학은 가서 뭐하게?

대학 진학을 포기하기엔 네 능력이 정말 아까워.


선생님을 이따위로 속여도 되는 거야?

네가 선생님한테 거짓말 할 아이가 아니잖아.


야, 이 쓰레기 같은 새끼들아.

아유, 이 이쁜 내 새끼들아.


- 초·중·고 학생들의 말

우리 담임선생님은 삼성이만 예뻐해. 걔 아빤 의사래.

우리 담임 미쳤나봐, 우리 반 왕따 그 자식보고 씩씩하다고 칭찬을 해주는 거 있지?


오늘도 선생님 바쁘다고 우리 자습시켰어.

그 선생님 이상해, 선행학습이 나쁘다고 학원에서 배운 것도 다 가르쳐 줘.


담임이 그러잖아, 돈 많이 못 벌면 병신 된다구.

우리 선생님이 돈보다 훨씬 중요한 게 생명이랬어.


- 대학생의 말

요새 직업 중엔 학교선생이 최고야, 일찍 퇴근하지, 일 적지, 방학 길지, 안 짤리지.

우리 학교 다니며 그렇게 선생들 욕했는데, 이젠 우리가 철밥통 교직을 바라고 있구나.



(둘)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는 어느 여름 날 아침, 넓디넓은 해변을 한 소년이 걷고 있었다. 소년은 썰물 때 뭍에 남게 된 수많은 불가사리 한 마리, 한 마리를 손으로 집어서 바닷물에 던져주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어른 남성이 소년에게 다가와서 안쓰러운 듯 말을 걸었다.

“얘야, 네가 그런 수고를 한들 달라질 게 뭐 있겠니? 여기에 나와 있는 불가사리가 수만 마리는 될 테고, 곧 해가 중천에 오르면 다들 금세 말라죽어버릴 텐데. 이 해안선 전체에 그런 불가사리는 셀 수없이 많잖아.”

소년은 씩 웃으면서 또 한 마리의 불가사리를 집어 들고 대답했다.

“하지만 얘한테는 크게 달라지는 거죠.”


- 미국의 구전(口傳) 이야기



(셋)

추상적인 사랑은 중요하지 않다. 남자들은 여자를 사랑하는 만큼이나 이상을 사랑해왔다. 남자들은 형제애를, 노동자들을, 빈민들을, 억압받는 이들을 사랑해왔다 - 그러나 그들은 사람을 사랑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이런 부류들 중의 최소한의 단위[사람]는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개인적으로" 사랑한 것은 아니었다. 사랑하는 것은 어렵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다. 당신은 톨스토이의 부활을 읽어보았는가? 톨스토이는 기나긴 수용소 열차에 수감된 정치범들에 관하여 이야기해준다. 그들은 동포를 위한 사랑으로 쇠사슬과 구금을 참고 견딘다. 시베리아로 향하는 긴 여정을 함께 하고 있는 바로 자신 곁의 이웃은 외면하면서. 언제나 우리 바로 곁에 있는 형제들이 아니라, 추상적인 형제들을 사랑하기가 쉬운 법이다.


- 도로시 데이, 브루더호프 공동체 뉴스레터



(넷)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바닥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쪼아 먹었다. 어떤 것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싹은 곧 나왔지만 흙이 깊지 않아서 해가 뜨자 타 버려 뿌리도 붙이지 못한 채 말랐다.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다. 가시나무들이 자라자 숨이 막혔다. 그러나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서 맺은 열매가 백 배가 된 것도 있고 육십 배가 된 것도 있고 삼십 배가 된 것도 있었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


- 예수, 마태오 복음 13



(다섯)

법어를 들을 때는, 법우(法雨)가 여러분 의식의 토양에 스며들도록 그냥 내버려두십시오.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고, 말씨름을 하거나 다른 것들과 견주거나 하지도 마십시오. 언어나 관념을 가지고 유희하는 것은 양동이로 빗물을 받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그냥 여러분의 의식이 빗물을 받아들이게 두면, 속 깊은 곳에 묻혀 있는 씨앗이 물기를 머금게 될 것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의식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잠재된 의식'과 '드러난 의식'이 그것입니다. 우리의 잠재된 의식 안에는 온갖 씨앗이 묻혀 있으며, 그 씨앗들은 우리가 경험하고 행하고 인식한 것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그중 한 씨앗이 물을 먹게 되면 드러난 의식 안에서 자기를 표현합니다.

우리가 하는 명상이란, 잠재된 의식의 정원을 가꾸는 일이지요. 정원사인 우리는 무엇보다 땅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과 이해의 씨앗, 깨달음과 행복의 씨앗이 처음부터 그 속에 묻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법어를 들을 때 너무 많이 생각하거나 베낄 필요가 없다는 말을 그래서 하는 것입니다. 그냥 그 자리에 있으면서 속 깊은 곳에 묻혀 있는 사랑과 이해의 씨앗이 물을 받아먹도록 내버려두면 됩니다. 스승만이 법어를 들려주는 건 아닙니다. 푸른 대나무, 노란 국화, 황금빛 석양이 모두 같은 시간에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잠재된 의식 깊숙이 묻혀 있는 씨앗들에 물을 주는 것은 모두가 참된 법(다르마)인 것입니다.


- 틱낫한, 첫사랑은 맨 처음 사랑이 아니다, pp.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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