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존재, 언어, 정

“근디 자유란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내 삶의 수준에서 구현돼야 헐 것이여 - 추상적인 이상으로서가 아니라. 구체적인 우리네 삶을 제대로 드러내는 건 우리의 말, 언어지. 인간은 자신이 말하는 대로 생각해 - 생각하는 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이데거가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잖아. 그래서 우리는 언어생활이 자유로워야 해. 헌데 과연 우리의 언어생활이 자유로운가?”

유진이 쉽게 답했다.

“지금이 뭐 군부독재 시절도 아니고, 자유로운 거 아닌가요?”

“그래, 아마 예전에 비하면 대단히 자유로운 편이겠지.”

“선생님께선 뭔가 덜 자유로운 부분이 있다고 보시나요?”

“그래, 난 우리나라 대다수 인구의 본질적인 언어생활이 대한민국의 표준어 권장정책 때문에 엄청나게 많이 훼손됐다고 봐. 쉽게 말해서, 지방 출신인 사람이 제 고장의 언어인 ‘사투리’를 무시하거나 져버리게 되는 경우가 그러하지. 이른바 ‘표준말’이라는 서울 말씨는 보편타당한 것이고, 나머지 지방 방언들은 국지적인 것이어서 지양할 대상이라는 생각, 이것이 우리나라 전체에 얼매나 많은 깊숙한 해악을 끼치고 있는지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르지. 전라도 말씨가 아니고선 자신도 자연도 표현할 줄 모르는 토종 전라도 촌놈들이 보기엔 서울 말씨 배워서 쓰는 이들이 죄다 가짜 같어. 이건 경상도 토백이 헌테도 마찬가지 얘기일 테고. 봐, 길가에 핀 엄한 꽃을 보고 ‘제라늄’ 해싸면 그건 진짜로 내 삶속에 들어오는 꽃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이름표, 딱지가 될 뿐이여. 고놈 보고 쥐손이풀이 해야 비로소 ‘진짜 꽃’이라고 나가 이해하게 되는 것이지, 내 머리로, 가슴으로, 오감으로, 내 온 존재로!

지방의 사투리는 그 지방 사람들의 영혼이 녹아있는 ‘존재의 집’이여. 난 서울 사람들이 인간성이 피폐해지고 이기적이 된 것이 단순한 ‘도시화’의 결과가 아니라, 도시화가 되면서 자신의 고향의 언어를 잃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라고도 봐. 지 고향의 언어를 잃어버린 이들은 이른바 ‘표준말’을 연마해서 그것을 어느 정도 쓸 수는 있게 되지. 문제는, 이렇게 제 고향의 언어도 아닌 서울 말씨를 자신의 ‘존재의 집’으로 바꿔 탄 사람들이 본래의 자신대로 잘 살지를 못한다는 점에 있겠어. 사실, 수도권과 전국에 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의 대다수인 이 사람들헌테 서울 말씨는 본래의 자신으로서 타인들과, 또 세상과 자연과 하늘과 제대로 관계를 맺도록 도움을 주지 못허지. 자신의 고향의 사투리로써 말할 때에야 비로소 제 이웃들과 본래의 인간적인 자신으로서 소통하고, 관계 맺을 수 있고, 신이 선사해준 제 주변의 자연에 대해서도 본래의 자신으로서 소통할 수가 있게 되거든.

촌에 사는 우리들은 서울말씨에 정나미가 없다고 봐. 너무 차갑고, 공식적이고, 산뜻하고, 깔끔하고, 계산적이어서 인간 본래의 인정이 안 담겨 있어. 물론, 소수의 토종 서울 촌놈들은 서울말을 써야 제 본래의 정을 낼 수가 있겄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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