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릉의 해변(2)
 

바닷가에서 또 한 번의 신나는 하루! 시시와 나나는 아빠와 함께 튜브 보트를 앞세우고 파도치는 바다로 출정을 감행했습니다. 둘 다 난생 처음 해보는 파도타기. 워낙 해안의 경사가 완만하여 한참을 바다 쪽으로 걸어나가도 여전히 아빠 무릎 정도만 잠기는 깊이에 불과한데도, 보트 손잡이를 꼭 잡고 앉아 밀려오는 파도의 출렁임에 몸을 내맡기고 물보라를 뒤집어 쓰는 아이들은 꺅꺅거리며 정신을 잃을 정도로 좋아합니다. 급기야 몸을 다 적신 후에는 저희들끼리 돌아가면서 서로를 태워주고 밀어주는 놀이에 열중하여, 너무 멀리 나가지 말라는 애비의 잔소리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열 살 짜리 언니를 보트에 태워 밀어주는 여섯 살 짜리 둘째 놈의 쬐그만 엉덩이가 재미로 볼록볼록거립니다. 함덕에서의 전날과는 달리 이날은 기온이 많이 올라가서 아이들이 물에 몸을 던지고 물장구도 칠 수 있었습니다. 단체로 놀러온 남녀 대학생들도 바닷물로 뛰어들어 신나게 놀더군요. 그 학생들을 보니, 나도 나이를 먹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저러면서 놀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안 생기는 걸 보면... 그저 애들과 놀아주는 게 재미있을 뿐.

노을 무렵이 되어선 물놀이를 그만 하고 게잡이에 나섰습니다. 작년의 경험과도 일치하는 것입니다만, 금릉 해변에서 바다를 바라볼 때 왼쪽으로는 작은 바위들과 그 틈 사이로 자라난 해초의 밭이 널따랗게 펼쳐져 있는데, 이 부근에서 바닷물이 발등에 찰랑거릴 정도 깊이의 모래를 잘 살피고 헤집으며 나가다 보면 놀랍게도 많은 게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곳의 게는 백사장에 숨어 살아야 하는 처지를 반영하듯이 하얀 껍질을 하고 있는데, 가장 큰 것은 어른 손바닥의 절반 만한 놈까지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놈들은 물론 힘이 세서 아이들은 무서워 잡지 못하고, 시시가 눈에 띌 때마다 "아빠! 게야!"를 외치면, 제가 바닷물을 텀벙거리며 미친 듯이 달려가 잡아주곤 했습니다. 그런 게를 직접 잡지 못하는 것이 자존심 상한다는 듯, 나나는 줄곳 집게만 채집하다가, 아빠가 큰 게를 잡게 되면 말없이 달려와 게 등짝만 조심스레 만져보곤 했습니다. 그렇게 생포한 게들을 아이스 박스를 비워 만든 수족관에 집어넣고, 지는 해를 아쉬워 하며 짐을 꾸려 숙소로 향했습니다. 바다를 떠나는 게 여전히 아쉬운 나나는, 이젠 선선해졌으니 물에 그만 들어가라는 엄마의 지시에는 아랑곳 없이, 아빠를 따라오며 틈만 나면 저 혼자 바닷물에 철퍼덕 엎어져서 물장구를 치기를 여러 번 반복했습니다.

그날은 너무 늦게까지 놀아서 저녁 준비 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펜션 입구의 '별주부전'이라는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이번에 제주도에서 들른 유일한 식당인 이곳도 - 가장이 먹는 데 큰 관심이 없어서 여행 다니며 맛있는 식당을 찾아 다니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 파도치는 바다를 바라보는 언덕 위에 야외 테이블을 마련해놓은 멋진 곳이었습니다. 헌데 청하지도 않았고, 실은 원치도 않았는데, 친절한 웨이터 청년이 야외 좌석의 유일한 손님이었던 우리 가족을 위하여 거대한 스크린에 윤도현 밴드 공연 모습을 틀어주더군요. 한적하고 조용한 걸 좋아하는 애비와 애비 편에 붙은 두 딸들은 록 음악이 "웃기고" 시끄럽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엄마만 혼자 재미있어 하는 가운데, 나름대로 맛있는 식사를 마쳤습니다. 식후에는 펜션의 정원에서 또 다시 아이들끼리 신나게 뛰어놀다 잠자리에 들었고, 저는 또 다시 술과 함께 야심한 시절을 즐기려 했으나, 너무 놀아서 피곤했던 탓에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베란다 창문 앞에서 맥주 한 깡통 따놓고 혼자 앉아 있다가 잠이 들어버렸는데, 도중에 깨보니 이미 새벽 세시였습니다. 그제서야 양치질 하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