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 채석강 (2)
 

 © Suk Hoon Han                                                                                                                                                                                      

채석강 기암을 따라 걸으며 사진을 여러 장 찍었습니다. 이와 같은 지형에 대해서 고등학교 때 지구과학 시간에 배우고 달달 외웠건만, 도무지 그 명칭이 떠오르지 않는 걸 보면 나 자신의 노화를 재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단절된 지층들이 켜켜이 쌓여있는 모습이 매우 견고해 보입니다. 일말의 틈도 없이 탄탄히 쌓여온 그 장구한 세월이 바로 실제, 현실, 또는 reality 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층이 축적되는 자연사적 현실은 작은 틈바구니도 용납하지 않았나 봅니다. 현실은 딱딱합니다. 신앙심은 그런 딱딱함의 융해와 와해를 믿습니다, 우리의 마음으로 그토록 딱딱한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고. 자연사가 아니라 인간사의 현실에도 어디 대충 설렁설렁 넘어가서 될만 한 그런 만만한 구석이 있을까요. 힘도 전혀 안들고 땀 한방울도 안 나오는 기도 좀 했다고 그 딱딱한 현실을 녹일 수 있을 것이라는, 그래서 내 입맛에 맞게 세상사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가소로운 희망을 부채질 하는 것이 신앙이라면, 그런 신앙이야 말로 마르크스가 손가락질한 민중의 아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믿음이 산도 움직일 수 있다는 말씀을 믿는 신자입니다만, 내 믿음이 아무 산이나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않습니다.

올해의 바닷가 나들이는 여기에서 끝내고 점심 무렵에 변산반도에 이별을 고했습니다. 떠나기 전에 격포항의 가장 잘 되는 식당에서 백합죽을 사먹었는데, 맛도 좋고 반찬도 푸짐했지만, 우리 동네의 '본죽' 집보다 훨씬 적은 양에다 비싼 가격(한 그릇에 만원) 때문에 쉽게 찾아먹을 음식은 못돼보였습니다.

다음 목적지인 남원까지 가는 길인 88고속도로에서 엄마와 두 아이는 낮잠을 푹 잘 수 있었습니다. 한낮의 햇살이 너무 뜨거워서 남원 구경은 저녁 무렵으로 잡아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