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애당(水涯堂)
 

 © Suk Hoon Han                                                                                                                                                                                      

첫날의 숙소는 안동 외곽 임하 댐 주변의 '수애당'이라는 고택으로 예약해뒀습니다. 숙소 선정의 기준은 아무래도 비용이었기에, 가능하면 친지의 회원권을 활용할 수 있는 콘도에서 묵으려 했으나, 첫날 밤은 11만원이라는 상대적으로 고가의 숙소로 정했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일종의 '체험학습' 공간인 셈이었죠. 헌데 결과적으로는 저 자신이 가장 흠뻑 그 고택을 즐기게 됐습니다.

객을 맞아주신 주인 아주머니는 후덕하시고 매우 정중하실 뿐만 아니라 다재다능한 분이어서, 거의 혼자서 거대한 고택을 관리하시며 밤에는 아이들을 위한 '체험학습'도 직접 운영하시고, 아침에는 눈이 휘둥그레질 만 한 아침상도 차리시더군요. 저의 딸내미들은 아주머니와 함께 대청마루턱에 걸터앉아 전통 거울 만들기 공예를 체험했습니다. 비록 뒷간과 욕실이 후원의 멀찍한 곳에 떨어져 있는 것이 좀 불편하고―특히 애들이 밤에 쉬하러 가기 무섭다하여 매번 손 잡고 데려다 줘야 하는 것이 귀찮았고―, 현대적 편의 시설이 미비된 점은 있지만, 어차피 고택 체험이란 게 문명의 이기로부터 벗어나서 옛날의 방식으로 하룻 밤을 지내보는 데 있는만큼 불평할 사안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특히 늘 도시생활 속에서 자연을 그리워 하는 제 경우에는 저녁 시간 내내 사랑채의 마루에 기대 앉아서 뜰의 수목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체험'이었습니다. 처와 딸들은 노트북 컴퓨터로 영화 한 편을 보는 동안, 저는 캔 맥주 몇 개 따마시며 마루에서 나무와 달과 밤공기와 데이트를 즐겼습니다. 두 시간 여를 그리 앉아 있어도 지루한 줄 모르겠더군요. 물론 구멍가게에서 사온 캔맥주의 도움도 있었겠으나, 옛집과 자연친화적 뜰과 울타리 너머의 수목이 선사하는 공상적 이야기의 세계가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 곳에 홀로 일주일만 푹 파묻혀 지내보고 싶습니다. 그럴 수 있다면 두 번째 책의 집필도 진도가 팍팍 나갈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