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왕산
 

 © Suk Hoon Han                                                                                                                                                                                      

여행 둘째 날 아침, 수애당에서 조반을 들기로 했는데, 1인분에 팔천 원이면 가격이 좀 쎄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허나 상을 받아보고는 그런 생각이 싹 가셔버리더군요. 보기에도 아름답고 정갈하며, 먹기에도 맛난 훌륭한 한정식이었습니다. 저의 처도, 또 함께 옆 자리에서 상을 받은 다른 방문객들도, 다들 아주머니의 요리 솜씨가 비상하다고 혀를 내둘렀습니다. 저는 미각이 그리 발달하지 못하여 그런가 보구나 했구요. 아침 든든히 잘 먹고 주인 아주머니와 작별한 뒤 수애당을 떠나 주왕산으로 향했습니다.

주왕산은 전에도 두 번 다녀온 적이 있고, 그중 한 번은 가족을 이끌고 갔었는데, 그게 불과 6년 전이었거늘 아이들은 어릴 때라 기억이 안 난다 해서, 이번에 다시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작년엔가 아이들에게 한국 지리 공부 시켜준다고 큰 도화지에 남한 전도를 그린 뒤, 우리나라 안에서 우리가 가족여행을 다녀온 곳이 몇 군데나 되는지 점을 찍어 표시해보니 총 48개의 점이 생기더군요. 애들이 애기일 적부터 열심히 차에 태워 끌고 다니긴 했지만, 저도 우리나라 안에서만 그렇게 많은 곳을 함께 다녀봤는지는 몰랐었습니다. 문제는, 너무 많이 다녀서 그런지 애들이 그 48곳 중 제대로 기억해내지 못하는 장소가 태반에 이른다는 데 있지요. 그래서 앞으로는 과거에 가봤지만 아이들이 기억을 상실해버린 장소들도 재차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그러한 2차 방문의 첫 목적지가 주왕산인 셈입니다.

다시 봐도 역시 주왕산은 아름답습니다. 다만 어제 못지 않은 폭염으로 인해 체구가 작은 둘째 나나가 기운이 빠져버리는 바람에, 더위 먹지 않도록 하기 위해 좀 신경을 쓰며 다녀야 했습니다. 다행히 산행 도중에 시원한 초록 빛 계곡에 발을 담그고 쉴 수 있는 곳들이 있어서 컨디션 조절에 도움이 됐습니다. 그런 계곡 물에 우리 가족은 모두 신발을 벗고 들어가서, 깊고 푸른 산의 정기를 몸으로 느끼며, 신비할 정도로 그 수가 많은 산천어 무리와 노닐었습니다.

이번에 주왕산에 오기 전에 아이들에게 6년 전 주왕산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여줬습니다. 함께 그 사진을 보며 세월의 속도를 실감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청년 같다는 소리를 듣던 저 자신은 늘어난 흰머리카락 수만큼 늙어버렸습니다. 아이들은 훌쩍 커버렸구요. 6, 7년 전에 저는 제 딸들에게 홀딱 빠져 있었습니다. 너무 작은 아이들이라 그야말로 눈에 넣고 다닐 정도였죠. 지금은 그리 하지 못 하고, 그리 하지도 않습니다. 아직도 고맙게 제 애비 따라다니며 함께 놀지만, 이제는 밖으로 뻗어나가려는 기운이 가득 한 소녀들이니까요. 세월이 무상하다 하지만, 그 세월 속에는 아름다움 뿐 아니라 부끄러움도 많지만, 그렇게 찰나처럼 스쳐가는 세월을 주신 신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