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
 

 © Suk Hoon Han                                                                                                                                                                                      

여행의 넷째 날에 저는 특별 보너스를 얻었습니다. 이날 하루는 처자식 돌보는 의무에서 해방되어, 혼자 등산 다녀올 것을 가족에게서 윤허받은 것입니다. 처와 큰딸은 흔쾌히 윤허하였으나, 둘째 나나는 끝까지 아빠에게 자유를 줄 수 없다며 버텼습니다. 그러나 애비의 비굴한 청에 동정심이 들었던지 막판에 허락해주더군요. 처와 아이들은 물놀이 온천욕장인 워터피아에 가서 하루 종일 지내기로 하고, 저는 혼자 차를 몰아 설악산으로 향했습니다. 실은 워터피아 입장료가 어마어마하게 고가여서 저 하나 빠지는 것이 가계에 보탬이 된다는 면도 작용했습니다.

전국의 48군데로 이 처자들을 이끌고 다니는 내내 한 번도 이런 자유를 누려본 적이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나 홀로 여행을 다녀온 지도 몇 해가 흘렀는지 모르겠습니다. 가족을 사랑하고, 그들과 시간을 나누는 것을 즐기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나 혼자 있고 싶은 욕구 또한 상존합니다. 양쪽 욕구를 골고루 충족시켜 줘야 '나'가 제대로 기능합니다. 처자식을 워터피아에 모셔다 드린 후, 저는 차를 설악산으로 몰았습니다. 헌데 외설악 입구 쯤에 다다르자 장대비가 쏟아지는 통에 산행의 의지를 꺾고 목적지를 바꿨습니다. 약 20분 거리의 남설악 주전골로 차를 돌렸습니다. 설악의 산줄기마다 날씨 차이가 심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어서 한 가닥 기대를 걸고 그리 했습니다. 대청봉에 이르는 외설악 산길은 십대 이후에 몇 번인지 헤아리기가 어려울 정도로 여러 번 가봤기에, 마치 어릴 적 고향을 찾는 기분으로 되찾아가곤 합니다만, 주전골 계곡은 최근에 두 차례만 다녀온 곳이라 특별한 감정이 투여돼있지는 않습니다. 허나 주전골 역시 설악골이어서, 갈 때마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아름다운 계곡임에는 틀림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