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골
 

 © Suk Hoon Han                                                                                                                                                                                      

다행히 주전골 입구 오색약수에 도착했을 때에는 약한 가랑비만 흩날리고 있었습니다. 카메라를 아내가 가져갔기 때문에 이번에는 주전골의 풍경을 기록할 수가 없었습니다. 윗 사진은 여러 해 전에 주전골에 왔을 때 찍은 용소 폭포의 모습입니다. 이 사진을 찍었을 때와 지금과의 차이는, 2006년의 홍수로 남설악 계곡이 엄청나게 훼손된 탓으로 예전의 온화한 모습이 많이 사라졌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남설악과 내설악을 돌아다녀 보면, 계곡의 바위들의 표면이 예전에 비해 상당히 거칠어진 것이 보이고, 뿌리째 뽑히거나 부러진 거목들도 적지 않이 눈에 띕니다. 그렇긴 해도 여전히 주전골은 원래의 아름다움을 완전히 잃지 않았더군요. 성수기가 살짝 지난 월요일에 비도 간간이 뿌려줘서인지 계곡을 찾은 이들의 수도 손으로 꼽을 정도였습니다. 바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분위기의 산행길에 들어선 셈이죠.

우산을 폈다, 접었다를 되풀이하며 혼자 걷다보니, 이제야 나의 본업인 '수행'의 길에 다시 돌아온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수행은 일상을 무대로 행해져야만 하거늘, 제가 가족들과 뒹굴며 노는 일상 속에서는 골치 아픈 수행의 과업은 빠져버린 듯 합니다. 그게 좋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아직 제게 주어진 일상의 모든 것을 행복으로만 소화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른 인간이기에 그저 '좋은 게 좋은 거지'라며 앉아 있을 수는 없습니다. 나의 길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주전골을 열심히 걸었습니다. 대단히 행복했습니다. 사랑하는 이들과의 시간도 행복의 시간이지만, 나 홀로 걷는 수행의 시간도 그못지 않은 행복의 시간입니다. 나 혼자일 때 신께서 함께 하심을 의식하기가 더 쉽기 때문입니다. 신께 감사를 드리고, 삶의 향방에 대한 질문도 던지며 시원한 계곡 길을 걸었습니다. 일단 곧 도래할 신학기에 충실해야 하겠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지금은 내게 주어진 젊은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해야 할 시기인 것 같습니다. 그밖의 계획과 '프로젝트'들도 있지만, 아직은 그 때가 아닌가 봅니다. 이런 판단의 도출에 대해 아무런 불만 없습니다. 오직 신께 감사드릴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