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농
 

 © Suk Hoon Han                                                                                                                                                                                      

다음 날 아침, 황태 해장국으로 속을 풀어주고 도산서원으로 향했다. 나는 가족을 데리고 두해 전에 왔었기에 벗이 열심히 구경하는 동안 강가 벤치에 앉아 강물에 상념을 띄워보냈다. 서원 건너 편의 정자 '시사단'을 바라봤다. 정조 때에 퇴계를 기리는 제사를 지냈던 곳으로, 이 정자 앞 송림에서 경상도 지역의 서생 7만 명이 모여 과거 시험을 보기도 했다고 한다. 과거 치르는 서생과 그 하인, 일행 등을 따져보면 10만이 넘는 인파가 이 오지의 강변 평원을 그득 채우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들이 공부한 것은 성현의 도이다. 그런 세상을 상상할 수가 있는가. 일제의 식민사관이라는 두터운 꺼풀을 힘겹게 벗겨내며 보다 보면, 조선은 독특하면서도 위대한 문명이 아니었던가 하는 상상이 일어난다.

시사단 양편의 강변에 자리잡은 너른 들판 위에서는 여러 대의 농기계들이 활발한 경작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서원 앞의 주민 한 분이 그 경작지에 얽힌 사연을 들려주었다. 도시에서 돌아온 젊은 귀농인들이 수자원공사 소유인 그 비옥한 경지를 불하받아 대규모 계획 농업을 일으켜서, 지금은 연간 가구당 억대 소득을 올리는 부농 마을을 일궜다는 것이다. 안동시로 흘러가는 급수원인 강물 바로 옆에 수질 오염의 가능성이 있는 농업 활동을 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도 있고 하여, 농약 사용을 금지하는 지자체 측과 농민들 사이에 갈등 소지도 많다고 하였다. 강 건너 편이 사람들의 활기로 시끌벅적해 보인다. 우리의 농촌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