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의 추억(1) (2022/3/27)



© Suk Hoon Han                                                                                                                                                                            



 

8년 전에 옛 애니메이션과 만화에 대한 책을 쓰겠다고 이 싸이트에 초고 일부를 올린 적이 있다(원고2 (myfaith.co.kr)). 그런데 그 사이에 삶에 많은 변동이 일어나 펜을(아니 자판을) 놓고 있다가 '죽음과 친해지는 삶'이라는 책을 먼저 써서 출간하게 됐고, 이제서야 접어뒀던 옛 프로젝트를 다시 소환하여, 구성을 완전히 바꿔서 새로운 분위기로 열심히 집필을 이어가고 있다. 아마 내년초에는 출간할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하는데, 그 내용에 대한 대강의 소개를 여기에 올려둔다. 임시제목: 'TV자아만화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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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에 대한 향수가 나이를 먹을수록 진해지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 가 있을 것이다. 1960년대 이래로 세상에 쏟아져 나온 수많은 애니메이션 작품들의 복원 영상이 유튜브에서 인기를 끄는 것을 보면 많은 사람이 나이를 먹으며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가 보다. 나의 유년기에는 ‘애니메이션’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고 ‘만화영화’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했으며 나는 ‘글로벌’한 오늘날에도 우리말 살리기가 중요하다고 믿지만, ‘애니메이션’이라는 용어가 이미 보편적인 외래어로 널리 통용되고 있다고 봐서 이 책에서 이 용어를 쓰기로 했다. 평론가들 중에는 1960년대의 기술적으로 조야한 만화영화는 애니메이션이라고 부르기에도 부적절하다고 하는 이들도 있으나 애니메이션 비평이 이 책의 주제는 아니므로 그냥 넘어가겠다.

옛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중·장년이 되어 다시 보면 어릴 적에 그것을 보며 느꼈던 정서를 다시 맛볼 수 있게 되고, 향수의 감정은 한층 더 자극받는다. 그런데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를 진하게 맛보는 이런 순간에 그 사람의 의식 속에서 어떤 의미심장한 심리적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건 아닐까? 막연한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넘어선 어떤 은밀하고도 깊은 의미를 담은 사건이...

중년이 지난 여자와 남자의 내면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보자. 사오십 년 넘도록 이 세상을 살아내고서 내면에 상처나 결핍 같은 게 전혀 없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사람들 마음에는 구멍이 뚫려있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많은 사람이 일종의 정서적 문제나 심리적 결핍을 안고 있고, 많은 사람이 40세 이후에 성취해야 한다는 ‘불혹’, ‘지천명’, ‘이순’ 등의 고매한 인격의 경지와는 영 동떨어진 자신의 성정의 민낯을 부끄러워하고 있을 것이다―적어도 자신에게 진솔한 이라면.

어쩌면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즉,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마음의 구멍을 메워줄 단서를 과거의 기억 속에서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사람들은 옛 만화 따위를 다시 감상하며 자신도 모르게(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내적 균열의 단서를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
왜냐면, 우리는 죽기 전에 완전체가 되어서 제대로 한 번 살아보려고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무진 애를 쓰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 내면 깊숙한 곳의 자신도 모르는 무의식이 우리의 삶에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을 외면하고 살 경우, 특히 중년 이후의 삶이 위태로워지기 쉽다.

그러니, 어린 시절로 퇴행하려는 심리 속에는 단순히 동심의 세계에 대한 그리움 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런 이유 중의 하나는 ‘자기 이해’라는 커다란 퍼즐의 잃어버린(또, 잊어버린) 조각들을 찾아내고 싶은 욕구일 것이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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