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의 추억(2) (2022/5/10)



© Suk Hoon Han                                                                                                                                                                            



 

과거에 옛 애니메이션과 만화에 대한 책의 집필에 착수해 여기에 몇 번 게시했었는데(원고2 (myfaith.co.kr)), 계획을 바꿔 '죽음과 친해지는 삶'이라는 책을 먼저 써서 작년에 출간하게 됐고, 이제서야 옛 프로젝트를 소환하여, 구성을 완전히 바꿔서 열심히 집필중이다. 내년초 출간 예정으로, 그 내용에 대한 대강의 소개를 여기에 두 번째로 올린다. 임시제목: 'TV자아만화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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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같은 베이비붐 끝자락의 세대는 우리나라에 흑백 TV가 최초로 상용화됐을 시기에 수많은 애니메이션 물의 열광적인 시청자 군을 형성했다. 나는 아동으로서 자신의 의식과 정서를 영상 매체의 가공스러운 위력 앞에 활짝 열어놓은 이 땅의 첫 세대에 속한다. 1세대 TV 방송의 콘텐츠가 당시의 아동과 청소년의 정신세계에 발휘한 위력에 관하여 우리는 아직 소상히 알지 못한다. 그러니까, ‘우주소년 아톰’을 열광적으로 시청했던 나는 단순히 아동용 ‘엔터테인먼트’를 소비하고 즐긴 데 그친 게 아니라, 아톰으로부터 뭔가 의미심장한 영향을 받았을 것이란 말이다. 나는 이런 영향에 대한 단서를 지난 십여 년에 걸쳐 풍부하게 수집했다. 이 책에서는 주로 옛 TV 애니메이션과 만화책 등의 이야기를 끄집어내서 그것들에 대한 우리의 기억과 감정 밑에 숨은 의미를 드러내 보려 한다. 그래서 나의, 우리의 자기 이해의 구멍 난 부분을 메워보려 한다.

1970년 전후에 단숨에 세상의 아이들을 사로잡은 ‘황금박쥐’나 ‘요괴인간’과 같은 최초의 TV 애니메이션을 보자. 이 작품들은 특이하게도 해골, 요괴와 같은 기괴한 영웅상을 제시했다. 어쩌면 주인공들이 실질적으로 귀신에 근접해있는 개체들이었기에 쉽사리 아이들의 혼을 쏙 빼놓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으나, 한번 생각해보라, 애들 만화에 해골이나 요괴가 주인공이라니! 그런 존재를 아동용 엔터테인먼트의 주인공으로 택한 작가도 괴이하지만, 그런 주인공에 열광한 아이들은 또 어떻고?

추측하건대, 이런 주인공을 영웅으로 설정한 원작자의 괴이한 ‘심뽀’가 동시대 아동들의 마음과 통하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흔히들 당연시하는 ‘순진무구한 동심’과 같은 단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마음은 아마도 그 시대의 아이들이 주변 세상(엄마, 아빠로부터 시작하여)과 관계 맺으며 경험한 성장기의 심리적 혼돈과 관련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왜 엄마는 맨날 나를 야단치고, 아빠는 밤늦게나 집에 들어오는지 아이는 이해할 수가 없다. 인식할 수도, 표현할 수도 없는 혼돈을 겪고 있는 아이는 무서운 엄마를 닮은 요괴인간 베라와 ‘가장’으로 처자식을 구해내야 하는 공허한 아빠 황금박쥐에 빨려든다. 아이들의 혼을 사로잡기 위하여 만화 속의 기괴한 영웅들은 대체 어떤 주문을 걸었던 것인지, 반세기가 넘은 기억을 소환해보려 한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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